하늘샘님께서 남겨주신 The Unseen Realm 서평입니다.
“You rock my world, Heiser”
누구든 자신만의 필터로 세상을 봅니다. 성경을 읽을 때도 그렇죠. 물고기가 물을 인지하기 어려운 것처럼, 렌즈를 자각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특히 21세기 인간은 자신의 합리성을 굳게 믿고 있기 때문에 일관성을 좋아라합니 다. 하이저 씨는 우리가 편안한 일관성을 위해 성경의 입체적인 깊이를 포기한다고 소리칩니다.
달리 얘기하면, 하이저에게 성경은 간단한 하나의 그림이 아니라 모자이크입니다. 조각 하나 하나를 제대로 이해 하지 못하면 큰 흐름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게 되어버리는 무시무시한 모자이크이죠. 지금 교회는 잘못된 해석들 이 모이고 쌓여서 성경의 본질을 잃어버렸습니다. 누군가는 이 잘못된 세상을 흔들어줘야죠. 저는 하이저 씨가 여 러분의 세상을 흔들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의 책을 소개합니다.
“세상 흔든다는 책 많이 읽어봤는데…”
맞아요. 저도 많이 읽어봤습니다. 성경의 난제들을 해결해준다는 책을 한 두권 읽은 게 아닙니다. 아쉽게도 이런 류의 책들은 몇개의 난해한 구절을 골라놓고 밋밋한 답변을 제공합니다. 그런데 하이저 씨는 난제들을 분리해서 개별적으로 다루는 게 아니라, 성경 전체를 이해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디테일을 놓치지 않 죠. 구절 하나 하나를 온전히 주해하면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방법을 선사한달까요? 그래서 이분의 결론에는 동의하지 않더라도 이분의 여정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믿을만 한가요? 다른 것도 아니고 성경 읽는 방법을 바꾼다는데… 이단 아님…?”
소개를 듣고보니 괜찮은 분 같은데, 의심의 구름이 쉽게 걷히질 않으시죠? 그런 분들에게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세 분의 이름을 공개합니다. 복 (Bock), 골딩게이 (Goldingay), 롱멘 3세 (Longman III)!
이제 90%는 하이저가 읽을 가치가 있는 사람으로 느껴지실테고, 10%는 아직 긴가민가 할 것입니다. “아니, 하이저는 우리가 아는 유명 대학을 나온 것도 아니고, 유명 대학에서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막말로 추천사는 돈 주면 써주는 거 아닌가?”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을 위해, 하이저가 미국에서 어떤 위치인지 간략하게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일단 현재 미국 아마존 신학 부문에서 판매량 43위를 달리고 계시구요.
또 이해하기 쉽게 위의 롱맨 3세와 비교해볼까요? 아마존에서 잘나가는 롱맨 3세의 역작, 국내에서 『최신 구약 개 론』으로 번역된 An Introduction to the Old Testament는 2006년에 2차 개정판이 나왔습니다. 이 책은 아마존 에서 리뷰가 50개, 평점은 4.5 점입니다. 하이저의 Unseen Realm은 2015년에 나왔는데 리뷰가 176개, 평점 은 5점 만점 꽉꽉 채우셨습니다. 아마존에서의 인기가 학자의 신뢰성이나 깊이를 대변하지 않지만, 이정도면 미국 에서 ‘잘나가는 아저씨’라고 해도 무방하겠죠?
“왜 그렇게 잘나간대요?”
일단 그는 언어에 능통합니다. 성서 히브리어, 성서 그리스어, 아람어, 이집트 상형문자, 우가리트 설형 문자를 포 함한 12개의 고대 언어들을 읽고 이해하고 그 언어들끼리 번역할 수 있다고 해요. 그가 이 많은 언어들을 어떻게 익혔을까요? 고대 근동 문서들, 헬라어 문서들을 읽어서 가능했겠죠. 언어 자체에 대한 빠삭한 지식과 그곳 문화, 역사, 종교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바탕으로 책을 썼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사실 고대 근동 언어에 능통하고, 그 역사와 문화에 대해 아는 사람은 많을 겁니다. 왜 하이저가 특별할까 요? 둘째로 그는 친절합니다. 말투도 친절하고, 문장 구조도 친절하고, 단어들도 친절합니다. 지나칠 정도로 자세 하게 설명하고, 중요한 부분은 두세번 짚고 넘어갑니다.
하지만 그의 친절함은 색다른 면이 있습니다. 보통 “rock your world”하는 학자, 작가들은 잔인합니다. 제가 아는 구약학자 E씨나 신약학자 E씨를 예로 들어볼게요. 두 분은 제가 쓰고 있던 안경을 빼앗아서 제가 보는 앞에서 부 수고 바닥에 던져 마구 밟아버립니다. 저는 한편으론 개운하지만, 이상하게 세상이 더 흐려져서 불편하고 불안해 집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반론했습니다. 예전에 잘 보이던 것들은 어디갔냐고. 그런데 그 때 그들은 제 앞에 없었 습니다.
하이저 씨는 반대로 제게 조심스레 다가왔습니다. 제 안경이 어떤 부분에 문제가 있는지, 어떻게 하면 고칠 수 있 는지 설명해주고, 제 동의를 구한 후에 제 안경을 가져갑니다. 그리고 순식간에 고친 안경을 주며 껴보라고 합니 다. 늘 쓰던 안경이 아니니 저는 낯설죠. 그렇게 헤매는 저와 익숙해질 때까지 함께 걸어주고 재차 설명해줍니다.
한 세계관에서 다른 세계관으로 환승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많은 책들이 독자의 세계관을 바꾸기 위해 노 력하지만, 그 과정에서 고통 받는 독자를 고려하지 않습니다. 독자가 틀렸다고 소리만 지르는 책들이 많은 시대에 하이저 씨는 조곤조곤 진리를 속삭여줍니다.
“그래서 어떤 내용이에요?”
이 책의 제목은 The Unseen Realm: Recovering the Supernatural Worldview of the Bible입니다. 이를 번역하면, 『보이지 않는 세계: 성경의 초자연적 세계관 회복』이 되겠죠.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하이저는 우리가 성경을 볼 때 그것을 쓴 사람들의 세계관으로 봐야한다고 합니다. 그 세계관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인정하는 데서 비롯되죠. 하이저에 의하면, 현대인은 철저하게 유물론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고, 그로인해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 석합니다. 그렇다면 올바른 초자연적 성경 세계관은 어떤 모습일까요?
하이저는 창조 기사와 시편 82편을 근거로 하나님이 홀로 세상을 창조하시지 않았다고 합니다. 왠 아리우스냐구 요? 아닙니다. 하나님에게는 천국 회의, 엘들의 회의, 즉 엘로힘의 모임이 있었습니다. 이 아이디어는 삼위일체 교 리를 갈아엎지 않습니다. 대신 엘로힘은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신 영적인 존재인 거죠. 하나님은 천국 회의가 필요하지 않으시지만, 성경은 그 존재에 대해 명확하게 얘기하고 있으며, 엘로힘은 하나님의 사역을 시행 하는 도구로 묘사됩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는데요, 하이저는 땅이 창조 되는 것을 목격했던 엘로힘도 동일하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천국 회의와 인류를 자신의 형상으로 만들어 하늘과 땅에서 당신의 의지를 실현하고자 하셨죠.
하지만 그 길은 순탄치 않습니다. 영적인 존재들과 인류는 동일하게 자유 의지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반항할 수 있고, 또 반항하게 됩니다. 그렇게 하늘과 땅을 향한 하나님의 선한 의지와 하나님이 아닌 존재의 끝없는 갈등 이 시작되죠. 온 땅이 에덴이 되기를 바랐던 하나님의 계획은 엘로힘 중 하나였던 뱀 때문에 틀어지게 됩니다. 뱀 의 유혹에 넘어간 인류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정당한 죽음의 소유가 되고, 그렇게 하나님과 다른 엘로힘들의 갈등이 시작됩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계획을 실현하는 편에 선 사람과, 다른 엘로힘을 의지하고 자신의 바람 대로 사는 사람이 나뉘게 되죠. 특별히 바벨 심판 이후로 세상은 양극화됩니다. 여호와는 아브라함을 택해 자신을 따를 민족을 만들고, 나머지 인류는 자신의 엘로힘과 그들의 뜻에 따라 살아갑니다.
이런 맥락에서 모세와 여호수아의 정복 전쟁은 여호와에게서 벗어난 신들과 그들을 따르는 인간을 심판하고 여호 와의 자녀들을 새로이 임명하는 행위가 되겠지요. 여호와는 가나안 땅에서 자신의 통치를 되찾습니다. 물론 그 과 정은 폭력적이었습니다. 여호와가 그들을 미워했기 때문이 아니라, 적의를 가진 다른 엘로힘과 그들을 따르는 무 리들이 창조주의 의지가 아닌 자신의 의지를 폈기 때문이죠. 여호와의 취지는 인간의 자유를 꺾고 억압해서 에덴 을 회복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형상을 온전히 드러내기로 선택한 사람이 자신의 형상을 무시하고 반항하는 사람을 변화시키길 원했지요.
하지만 가나안 프로젝트는 실패합니다. 이스라엘은 온전히 창조주의 뜻을 실현하기를 거부하고 가나안 본토인과 공존하기를 선택합니다. 이스라엘의 행동으로 인해 여호와의 사자는 본토인을 쫓아내지 않을 것이라고, 본토인이 결국에는 가시가 될 것이라고, 본토인의 엘로힘이 올무가 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이 예언은 현실이 되어 이스라 엘은 그 역사 내내 롤러코스터를 탑니다.
사사들의 시대가 끝나고 이스라엘 왕조가 시작되지만, 큰 그림은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겉으로 보면 나라들의 전쟁 이야기, 정치 이야기 같고 왕들의 일대기를 엮은 것 같지만, 사실 구약 기록자들의 의도는 그게 아니었습니 다. 저자들은 이스라엘의 실패 뒤에 있는 영적 인과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들이 우리와는 다르 게 초자연적 세계관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왕조는 이방 엘로힘과 여호와,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왕들과 나라들의 영적 갈등을 다룬 이야기가 되지요. 끊임없는 갈등 속에 롤러코스터를 타던 결국 유다와 이스라엘은 계 속 부정(不貞)의 길을 택하고 포로가 되고 맙니다.
결국 한가지 결론만이 명확해집니다. 에덴은 여호와의 지속적인 임재가 없이는 회복될 수 없다는 것, 하나님 나라 는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질 수 없다는 것이죠. 이스라엘의 마지막 순간 속에서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 “계획 변 경!”을 외칩니다. 하나님의 지속적인 임재가 그 자녀들의 가슴 속에 있을 것이라고, 하나님 자신이 두번째 아담이 되겠다고 선포합니다. 이 과정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이방 엘로힘의 수장, 바벨론이 여호와의 도구가 됩니다. 유다 가 죽음의 문턱에서 헐떡이고 있을 때, 여호와는 지리를 뛰어남는 하나님 나라를 만들겠다고, 자신이 인간이 되어 그 초석을 다지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봉오리가 신약에서 피어납니다.
많은 사람들은 신약이 예수의 삶과 그에 대한 사도들의 증언이라고 생각하지만, 하이저 씨는 더 많은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그에 따르면 신약은 수천년에 걸쳐 쌓인 고난의 재탄생인데요, 신약 속 하나님의 사람들은 소외되 고, 외국인의 지배를 받습니다. 어디서 많이 본 얘기죠? 그들에게 모세, 다윗, 솔로몬의 영광은 기억일 뿐입니다. 하지만 천사가 마리아에게 예수의 탄생에 대해 예언하는 순간, 수세기의 침묵이 깨어지며 유대 땅은 빽빽한 영적 전쟁으로 포화상태가 됩니다. 신약의 모든 장(章)은 그 갈등을 보여줍니다. 예수가 가는 곳마다, 그의 말 한마디 하 나하나에서 보이지 않는 두 세력의 충돌이 드러납니다. 그 갈등은 예수를 죽음까지 몰고가고, 십자가와 빈무덤은 여호와의 교두보가 됩니다.
신약의 나머지 이야기도 구약의 모티브를 그대로 가지고 갑니다. 여호와가 하늘에 있어서 보이지 않지만, 땅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함께한 것처럼, 예수는 승천했지만 여전히 교회와 함께 합니다. 아브라함의 씨앗들이 광야에서 흩어져 각기 유배지에서 여호와를 드러낸 것처럼, 예수의 제자들은 각 나라로 흩어져 영적 전쟁의 선봉장이 되어 다른 엘로힘과 맞써 싸웁니다. 그렇게 여호와 왕국은 천천히, 하지만 치열하게 확장됩니다.
“와! 엄청난 내용인데요?”
그렇죠? 방대하고 세세한 책을 요약하느라 애먹었습니다. 요약하면서 넣고 싶은 내용, 하고 싶은 얘기가 정말 많 았지만, 스포일러도 피할 겸, 큰 그림부터 그려드릴 겸 참았습니다. 그리고 저보다 하이저 씨가 직접 설명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요! 위 내용 뿐 아니라, 왜 하와는 뱀이 말을 했을 때 놀라지 않았을까? 어떻게 네피림의 자손들은 홍수 때 죽지 않았을까? 어떻게 영적인 존재들은 하나님의 결정에 참여할까? 천사들도 고발하지 못하는 영광 있 는 자들은 누구일까?와 같은 질문에 대한 해답도 제시합니다. 그러나 답을 제공하는 것보다 중요한 게 뭐라구요? 현대인들이 이런 질문들을 제기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뭐라구요? 성경의 초자연적 세계관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 하기 때문인 거죠. 하이저 씨가 다룰 수 있는 문제들을 다 다루기는 하지만, 그가 정말 전달하고 싶은 것은 바른 성 경 세계관을 갖자는 겁니다.
“근데… 정말 다 믿어도 되나요?”
저 역시 책을 읽으며 갸우뚱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어쩌면 하이저 씨가 제 세상을 충분히 뒤흔들어주지 않아서 일 수도 있고, 어쩌면 그분도 자신의 세계관에서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어요. 누구도 어떤 책을 완벽하 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스스로 판단 해보시라고 하고 싶습니다.
이미 성경에 대한 깊이 있고 다양한 이해를 갖고 계신다면 하이저 씨의 목소리 또한 꼭 들어보셔야하겠고 (골딩게 이도 ‘아니 이런 책이 있었단 말이야?라고 할 정도니까요), 아직 개관 책 한 권도 못 읽어봤다면 친절하고 방대한 하이저 씨와 첫단추를 꿰는 것, 더욱 좋겠습니다. 이 분의 신학에 대해 심도 있게 나누고 싶은 얘기가 많은데 아직 읽은 사람이 많이 없어서 제가 이러쿵 저러쿵해도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 같으니, 하이저 씨의 명성이 한국에 도 퍼져서 같이 얘기 나눌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네요!
나가며…
개인적으로 이 책을 통해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많은 저자들이 감동을 주려 노력하지만, 억지스럽다는 느낌을 숨기지 못하지요. 하이저 씨는 정말 성경을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성경 자체로 은혜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 같습니다. 신학적인 얘기 잔뜩 늘어놓고 갑자기 은혜로운 해석을 조작해내는 게 아니라, 정말 성경 있는 그대로를 선사하려하니 그게 은혜가 되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도 저와 같은 은혜를 경험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족
하이저 씨는 제가 사랑하는 로고스 성경 소프트웨어의 scholar-in-residence, 로고스 전속 학자입니다. 로고스에 서 학술적 제품을 위한 프로젝트를 고안하고 평가하면서 동시에 로고스에서 운영하는 학술 프로젝트들을 감독하 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대학생들을 가르치고 학술 저널에 기고하면서 쌓은 경험으로 거의 모든 수준의 독자를 상 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셨으니, 적절한 직책을 갖고 계신 것 같아요.
게다가 하이저씨는 독특한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을 향한 사역에 동참하신다고 합니다. 전통적인 믿음을 가지고 성 경을 읽던 중 이해가 안되는 질문을 목회자에게 했다가 “뭐 이런 걸 물어봐! 이 독사의 자식아!”같은 핀잔들을 들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해괴한 세계관에 빠진다고 하시네요. 꼭 필요하지만 쉽지 않은 일을 하시는 것 같습니다. 존경스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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