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마크 워드(Mark Ward)
옮긴이 – 하늘샘
비록 여러분이 단 한 번도 설교할 일이 없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좋은 설교란 어떤 것인지 아셔야 합니다. 이는 단지 설교를 들을 때 그 설교가 나쁜 설교인지 알기 위해서(그리고 피하기 위해서)만 필요한 작업이 아닙니다. 심지어는 좋은 설교가 무엇인지 찾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좋은 설교가 무엇인지 이해해야 하는 이유는, 현실적으로 이야기하면, 여러분이 성경을 해석하는 매순간 여러분이 자신에게 설교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에게 얼마나 좋은 설교를 하시나요?
설교를 준비하는 과정 중 많은 부분은 단순히 성경을 읽고 그것을 자신의 삶에 적용하는 과정 자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설교자만큼 몸짓이나 목소리 전달에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만, 설교를 준비하는 데 필요한 그 이외의 모든 작업은 해야 합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은 —전도할 때 나누는 대화에서나, 소그룹 성경 공부 시간에나, 심지어 페이스북에서 댓글을 달 때도— 본문에 대한 수사학적 구조까지에도 신경 쓸 필요가 있습니다.
자주 저지를 수 있는 실수
브라이언 채플(Bryan Chapell) 씨는 그의 탁월한 저서 『그리스도 중심 설교 이렇게 하라』(Christ-Centred Preaching)에서 설교자 및 성경을 공부하는 사람이 빠지곤 하는 큰 함정 중 하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채플 씨는 이를 “-처럼 되어라”(Be-Like) 메시지라고 부릅니다.
“-처럼 되어라” 메시지는 기본적으로 “이러이러한 성경 인물처럼 되어라”라는 권면입니다. 이런 접근법에서 아브라함, 모세 및 다른 구약 인물들이 일반적으로 사용됩니다. “-처럼 되어라”의 방식으로 진행되는 성경 공부 모임이 끝나면, 참가자들은 노아, 기드온, 라합, 입다와 같이 본받고 싶은 사람의 다섯 가지 특성을 마음에 품으며 모임을 마무리하게 됩니다.
이게 왜 문제가 될까요? 사실 이런 접근법 자체가 완전히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기 전에 제가 실제로 들은 설교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자세한 내용을 바꾸고 또 여러 이야기를 섞은 결과로 나온 예시이기 때문에 제가 이 설교를 어디서 들었는지는 추측하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처럼 되어라” 메시지
이 이야기 속 설교자는 민수기를 본문으로, 가나안 땅에서 충실하게 업무를 처리한 스파이였던 갈렙과 여호수아를 주제로 설교했습니다. 이 설교의 주제는 정확히 “갈렙과 여호수아처럼 되세요” 였습니다. 청중들이 닮아야 했던 인물의 특성은 간편하게 C로 시작하는 다음의 세 단어로 요약되었습니다: “헌신”(Commitment), “조정”(Conciliation), “성품”(Character)
설교는 무리 없이 끝납니다. 다 함께 “큰 죄에 빠진 날 위해”(Just As I Am)를 부릅니다. 고개를 숙입니다. 눈을 감습니다. 앞으로 나옵니다. 기도합니다. 예배 끝! (그리고 예배 시간 동안 읽지 못한 문자 메시지를 읽습니다)
여러분이 자란 교단이나 교회 전통에 따라 예배는 조금씩 다르게 끝날 수도 있겠지만, 저는 모든 복음주의 스펙트럼에서(그리고 그 이외의 분위기에서도) 이런 형식에 부합하는 설교를 들어보았습니다. 브라이언 채플도 분명히 같은 경험을 한 것 같습니다.
알파벳을 맞추어 두운법을 쓰기 위해 성경의 내용을 왜곡한다는 경향을 차치한다면(Q처럼 외로운 글자들은 절대 사용되지도 않죠), 채플이나 저와 같은 사람이 이런 설교에 대해 불평할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처럼 되어라” 메시지는 복음 없는 율법을, 의무를 시행하는 데 필요한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 책임을 전달함으로써 성경을 잘못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율법과 복음
상기한다고 해서 문제 될 건 없겠지만, 기독교 환경에 있는 설교 청중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의무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대신 우리는 바울이 로마서 7장에서 붙잡고 있는 문제를 마주하고 있으며, “-처럼 되어라” 메시지는 절대 답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기 원하는 내용은 “나는 왜 이 모든 의무를 시행하지 못하는 것 같지?”에 대한 대답입니다. 우리는, 바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제시하는 대답은 당연히 우리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나의 의무 시행을 파기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의무를 지키는 능력을 불어 넣어줍니다. 저는 갈렙에 대한 설교 전체를 열심히 들었지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언급은 듣지 못했습니다. 예배의 다른 부분에서 은혜에 대해 들었는데, “-처럼 되어라” 메시지에서 이를 들을 수 있는 유일한 부분이었죠. 바로 마치는 기도입니다. 설교자는 마치는 기도에서 하나님께 “도움”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좋습니다! 하지만 은혜가 설교 안에서는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본문에는 거의 확실하게 있었는데 말이죠.
균형 찾기
오늘날의 몇몇 설교자들과 신학자들은 자신들이 듣는 “-처럼 되어라” 메시지에 과민반응합니다. 이들은 성경이 갈렙을 선행에 뛰어난 본보기로 제시한다는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주장하며, 대신 갈렙을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하시는 이야기의 한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서만 보여준다고 합니다. 몇몇 복음주의자들은 정말로 진자의 한쪽에만 서 있습니다(사실 이 문제는 오래된 논쟁입니다. 이에 관해서는 다양한 글을 통해서 알아보실 수 있는데, 특별히 존 프레임[John Frame]의 유명한 에세이, “Machen’s Warrior Children”의 열다섯 번째 포인트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 글은 프레임 씨의 Collected Shorter Writings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받은 인상에 의하면 성경을 읽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진자의 반대편에 서 있습니다. 그들에게 본문 속 성경 인물이란 따라해야 할 영웅이기만 하거나 때로는 심하게 비난해야 할 악당이기만 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균형을 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은혜에 관한 하나님의 평서문(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해 한 일들)이 항상 우리의 의무에 대한 명령문들(그리스도와 연합한 새로운 피조물들이 이제 반드시 해야 할 일들)로 흘러가야 합니다. 이 패턴이 바로 성경의 패턴입니다. 로마서나 에베소서처럼 한 책 전체에서도 이런 패턴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두려움과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원하시고 또 행하시기 때문입니다(빌 2:12-13). “-처럼 되어라” 메시지는 우리에게 명령문은 주지만 그를 가능하게 하는 평서문을 빼먹어 버린다.
그림: <“-처럼 되어라” 메시지는 우리에게 명령문은 주지만 이를 가능하게 하는 평서문을 빠뜨린다>
그리고 이 평서문들은 성경의 본문 안에 들어있습니다. 여러분이 추가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이지요. 평서문은 민수기에서 갈렙과 여호수아가 반복적으로 (자신들의 용기가 아니라) 승리하게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 호소한 장면에서조차도 등장합니다. 이 평서문들은 민수기의 전반적인 맥락에서도 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으며 더불어 성경의 전체 이야기에서도 한 부분을 이룹니다.
민수기 책 전체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이 어떻게 이행되는지를 보여줍니다. 민수기가 하는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자손(씨앗, seed)이, 비록 그 자손이 신실하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에 갈 수 있을 것인가?” 민수기의 첫 10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그 땅에 들어가기 위해 준비하지만, 민수기의 나머지 부분(11-21장)에서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여호수아와 갈렙 대신) “나쁜 보고”를 했던 10명의 신실하지 못한 스파이들의 의견을 들었기 때문입니다(민수기 13:32). 결국 이스라엘 사람들은 광야에서 40년을 보내게 되었고, 홍해를 건넌 세대에 속한 모든 사람이 죽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는 여호수아와 갈렙을 통해 하나님께서 건네신 은혜를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네, 우리는 이 두 사람의 믿음을 본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야기 뒤에 숨겨진 은혜로운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에게 손을 내미는 장면 또한 봐야 합니다.
한 발짝 물러나서 구약 전체의 이야기를 본다면, 출애굽의 기적들을 경험하고도 스파이 대부분과 이스라엘 사람 대부분이 신실하지 못했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이 믿음 없는 사람들의 선행을 보시고 그들을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는 점이 꽤나 명백하다는 얘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신명기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또는 너희의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신명기 7:7-8, 개역개정)
하나님 이야기의 또 다른 주요 테마가 여기에서 등장합니다. 민수기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의 백성에게만이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적용됩니다. 갈렙은 그니스 사람으로, 에서의 후손이기에 사실은 약속의 내용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는데요. 이 역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내용, 즉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으리라는 내용의 일부입니다(창세기 12:3).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 하나님의 자비를 받을 자격은 없지만 모두 동일하게 받습니다. 그게 바로 은혜이죠.
구속의 관점에서 성경 공부 하기
브라이언 채플 씨에 의하면, 성경을 읽는 우리들은 “성경이 거의 모든 족장이나 성자의 안 좋은 점에 대해 말하는 데 쏟는 관심을 존중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는 목적이 언제나 인물의 좋은 인성을 찾고 그걸 받아 적어 우리가 영적으로 해야할 일 목록에 추가하는 게 되어 버리면, 우리는 성경의 관심사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다윗, 기드온, 노아가 보여주는 긍정적 예시들은 우리가 본받을 수 있도록 주어진 게 맞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간음, 기드온의 배교, 노아의 술취함 같은 그들의 죄악이 기록된 것도 어떤 면에서는 우리가 그들을 통해 도덕적 가르침을 얻기 위해서 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심지어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은” 것이 하나님의 목적에 부합한다고 얘기합니다: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고린도전서 10:5-6, 개역개정)
하지만 성경은 일차적으로 인간에 대한 것도, 우리가 어떤 일을 했고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를 다루는 책이 아닙니다. 그건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창조자이신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셨고 또 인류가 죄에 빠져 생긴 난처한 상태에서 우리를 어떻게 구해주실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성경 전체의 이야기 속에는 은혜로 가득한데요, 이는 우리가 본질적으로 구원 받을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행하신 모든 일, 특별히 그리스도를 통해 하신 일은 바로 은혜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의 타락한 피조물을 구원하심으로써 자신을 영화롭게 하시기 위해 어떤 일을 행하셨는가를 다루는 이야기입니다. 바로 이런 이해를 여러분의 영성 훈련 시간에 적용하시기 바랍니다. “-처럼 되어라”이기만 한 성경 공부를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대신 성경의 모든 페이지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은혜 가운데 역사하시는지 살피시기 바랍니다.
마크 L. 워드 주니어(Mark L. Ward, Jr.)는 2012년 밥 존스 대학(Bob Jones University)에서 박사 학위를 수여하고 지금 Logos 프로(Logos Pro)로서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워드 씨는 성경적 세계관: 창조, 타락, 구속(Biblical Worldview: Creation, Fall, Redemption)을 포함한 많은 고등학생용 성경 교재를 저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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