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지금까지 다양한 성경 학자들에게 다음의 질문을 던져왔습니다: “어떻게 하면 탁월한 성경 학자, 탁월한 신학자가 될 수 있나요?” 앞으로 수년간(아니면 더 긴 시간에 걸쳐) 매주 월요일 이 질문을 던지고서 들은 답변을 여러분 앞에 풀어 보려 합니다. 오늘 Logos 학술 블로그(theLAB [the Logos Academic Blog])를 구독하시고 단 한 편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글쓴이 – 타비스 보힐린저(
옮긴이 – 하늘샘
첫째 주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톰 라이트의 답변을 들려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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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성경을 연구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저는 이런 조언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역사학자가 되려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므로 역사학자답게 우선 1차 자료에 대해 최대한 광범위하고 또 깊게 알아야 합니다. 헬라어 신약성경을 꿰고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칠십인역(및 히브리어 성경)을 꾸준히 읽어야 합니다. 또한 초대 기독교인들이 이 문헌들을 어떻게 읽었을지 상상해 봐야 합니다. 더불어 제2성전 유대 세계에 대해 알아야 하며, 당시 유대인들이 사해 사본, 요세푸스, 외경, 위경, 필론 및 (최소한) 초기 랍비 문헌을 어떤 방식으로 되찾았는지 이해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 시대와 연관된 비문(碑文), 파피루스 문서, 주화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마카베오부터 바르 코크바 그리고 그 다음 시대까지의 역사에 정통해야 하며, 여러분 자신이 그 세계에 살고 있다고 계속 상상해 봐야 합니다. 역사학자에게 가장 중요한 과업은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사고했던 사람들의 머리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시대 사람들의 두뇌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야말로 여러분이 평생 몰두하고 즐거워해야 할 작업입니다.
다음은 신학입니다. 신약성경을 공부한다고 말하면서 성경의 주제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는 없겠죠? 여러분은 제2성전 시대 사람들이 하나님/신/신들, 세상, 인간, 윤리, 예배 등을 이해한 방식을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 방식에는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았던) “순도 100%” 이교 사상에서부터 위대한 철학 사상들, 유대교 세계관들까지가 포함됩니다. 결국 여러분은 초대 기독교인들이 세상을 이해한 방식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여러분은 이 시대 사람들이 자신들을 어떤 광범위한 담론 속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었는지 계속 알아봐야 합니다. 위 작업들을 위해 여러분은 최소 이레네우스와 터툴리안의 시대까지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몇몇 후기 기독교 신학자들이 (성전, 토라, 광대한 유대교 내러티브들과 같은) 신약성경 저자들이 속해있던 유대교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삼위일체, 기독론, 속죄 등과 같은) 신약성경과 동일한 메시지를 그 시대에서 읽어내려고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아타나시우스에서부터 아퀴나스까지, 또 칼빈에서 바르트까지, 그리고 그 이후의 신학들은 모두 풍성한 보물 창고입니다. 그러나 조심해야 합니다. 이 신학자들은 모두 자기 신학이 “성경적”이라고 주장하지만, 이 주장이 사실인지 확인하고, 그들의 신학을 주기적으로 찔러보고, 또 필요하면 그들의 논지에 이의를 제기하기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그리스도인, 유대인, 무슬림, 그리고 무신론자에게라도 동일하게 들려드렸을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성경과 신학을 공부하는 그리스도인에게만 특별히 다음과 같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한편으로는 개인적으로 성경을(특별히 시편을) 읽으시고, 기도하시고, 규칙적으로 교회의 성례 예배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어떤 형태로든) 가난한 사람을 섬기시기 바랍니다. 이 모든 것이 여러분을 한 인격체로서 성장시켜 나갈 것이며, 여기에는 당연히 사유하는 사람으로서의 성장이 포함됩니다. 어쩌면 이러한 활동의 열매를 당장 보지 못할 수도 있고, 어쩌면 영영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활동들은 여러분의 역사 연구와 신학 연구 가운데, 성령님의 생기가 넘치는 인생을 만들어 내고 또 유지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여러분이 완벽해지거나 절대 실패하지 않을 신학자나 역사학자가 되지는 않겠지만, 이런 삶은 여러분을 여러 적절한 방향으로 인도해 줄 것입니다. 더불어 어려운 작업을 수행하다가 (모두가 그러하듯이) 실패했을 때 용기를 줄 뿐 아니라, 정말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 예외적인 상황에서도 겸손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톰 라이트, 신약성경 및 초기 기독교 교수, 세인트 앤드류스 대학
손창민 says
2019-05-30 at 2:23 오후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