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마크 워드(Mark Ward)
옮긴이 – 하늘샘
‘사랑'(Love)이란 단어는 메리엄-웹스터 인터넷 사전에서 세 번째로 가장 많이 검색되는 단어입니다. 혹시 ‘사랑’의 의미를 알고 싶으신가요? 알고 싶으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권위로 성경의 가장 중요한 두 명령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이죠.
어쩌면 여러분은 이미 아가페(agape, ἀγάπη)가 헬라어 신약성경에서 사랑을 의미하는 기본적인 단어라는 것을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여러분은 이 단어가 특별히 (우정과 같은 사랑을 뜻하는 필리아[philia, φιλία]와는 반대인) 이타적이고 자신을 내어주며 감정이 아닌 사랑을 의미한다고 들으셨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주장하는 바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자 하며, 성경 공부에 어떻게 헬라어를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보여드리기 원합니다. 더불어 제가 지금 가르쳐 드리는 방법을 사용해 아가페의 의미가 주로 등장하는 본문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모르는 사람은 어떻게 원어를 이해해야 할까?
언어학자이자 신학자인 모이세스 실바(Moisés Silva)는 우리에게 성경을 조심스레 읽기를 권면합니다. 그렇지만 너무 꼼꼼하게, 혹은 잘못된 방식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영감을 불어 넣으신 글에는 당연히 의미가 넘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속 단 한 단어도 무의미하거나 삭제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길 수 없습니다. 이 명제 자체는 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언어로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절대 잊으면 안 됩니다. 성경 해석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책이나 설교 중 많은 부분이 하나님께서 암호를 사용하셨거나, 혹은 인위적이거나 심지어 비밀스러운 언어를 사용하셨다고 암시합니다. … 우리는 다음의 기본적인 원칙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 위해서 선택하신 자연스럽고 단순한 형식 자체가 성경의 메시지에 있는 풍요로움이나 하나님께서 왔다는 사실을 손상하지는 않을 거라는 원칙을 말이지요.”
“하나님으로부터, 언어와 성경: 일반 언어학의 관점으로 성경 읽기”(From God, Language and Scripture: Reading the Bible in the Light of General Linguistics), 모이세스 실바(M. Silva) 편집, 『현대 해석의 기초들』(Foundations of Contemporary Interpretation)(pp. 200–201).
솔직히 말씀드리면,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모르는 상태에서 이런 성경 공부 방법을 적용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다고 원어를 아신다고 해서 이런 유혹에 빠질리가 없다는 건 아닙니다!) 원어를 아는 사람, 원어를 모르는 사람, 원어를 모르지만 Logos 성경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은 모두 성경을 읽을 때 원어가 성경 연구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제대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역할이란, 대개 단어의 의미보다는 문장 구조 및 논증과 관계가 있습니다.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사용하여 도달하려는 목표는 주로 성경 단어의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진짜 의미‘를 찾아보는 데 있지 않습니다.
탁월한 복음주의 구약학자 월터 카이저(Walt Kaiser)의 의견을 들어봅시다.
“헬라어 및 히브리어 연구는 2-4시간 만에 배울 수 있는 기술, 즉 단어를 파싱하고 사전, 용어 색인(concordance), 또는 분해 자료에서 단어를 찾아보는 것 이상의 기술입니다. 진정한 원어 연구는 원어 구문을 통해서 의미의 ‘맥락들(실타래, threads)’을 찬찬히 따라가는 작업입니다. 제대로 된 원어 이해는 생각의 단위들이 연결되는 ‘이음매’나 ‘솔기’를 드러낼 수 있지만, 번역 성경은 그럴 수 없습니다. 이렇게 본문의 구문 속에 있는 이음매를 따라가는 작업이 하나님의 말씀이 가진 원래 권위를 반영하는 설교를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작업입니다.” (출처)
저 역시 성경 교사로서 돌아가신 헬라어 문법학자이자 신학교 교수인 로드 데커(Rod Decker)가 알려준 지혜를 따라 살기 위해 노력합니다.
“저는 종종 제 학생들에게 얘기합니다. ‘만약 영어 성경으로 지역 교회 청중에게 본문의 의미를 설명하지 못한다면, 지금 제시하는 그 의미가 합당한지 한 번 더 생각해봐야 한다.’” (출처)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다시 사랑이라는 단어로 돌아옵시다. 요한복음 21장은 데커 박사가 말하는 완벽한 예시를 보여줍니다. 저는 제가 대학교 1학년 때 이 본문 속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나눈 유명한 대화의 실체를 밝히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비밀 헬라어 열쇠를 받았던 것을 기억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세 번 물어보십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이에 베드로는 매번 대답합니다. “네, 저는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저는 당시 약하고 불분명한 영어 단어 ‘사랑'(love) 뒤에 아가파오(ἀγαπάω)와 필레오(φιλέω)라는 헬라어 단어가 숨겨져 있다고 들었습니다. 나아가 저는 두 헬라어 단어가 완전히 다른 두 종류의 사랑을 설명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하나는 이타적이고 비감정적인 사랑이요, 다른 하나는 단지 감정적이고 우정에 가까운 사랑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해석에 의하면, 베드로는 처음 두 번 질문을 받았을 때 예수님을 이타적으로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었고,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친구로라도 사랑하느냐?”라고 물어보신 게 되는 셈입니다.
자주 접할 수 있는 이 해석은 언뜻 보면 매우 풍성한 해석으로 보여서 저는 이 해석이 참된 해석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제가 방금 제시한 성경 공부 방식과 충돌합니다. 이런 해석 방식은 본문 전체를 그 맥락에 따라 읽는 대신 헬라어 단어의 의미를 추정하는 데 많은 비중을 두기 때문입니다. 그때 제게 저렇게 요한복음 21장을 해석한 선생님처럼 성경을 읽는 학생은 영어 성경으로 자신의 의견을 증명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한 번도 진짜 사랑, 이상적인 사랑이 비감정적이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대화하시면서 의미가 아니라 스타일의 관점에서 두 단어 아가파오와 필레오를 교차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헬라어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원어를 사용하는 것의 문제점 중 하나는,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하지 않게 된다는 점입니다. 요한복음 21장 속 동의어들이 모두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을 위해 사용된 걸까요?
Logos에서 판매하는 가장 가치 있는 모음집 중 하나인 이 책에서 D. A. 카슨(Carson)이 주장하는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의 대화에서만 사랑이라는 개념을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단어를 사용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양’을 언급하시기 위해 다양한 단어를 쓰셨습니다.
–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
– “내 양을 치라”
– “내 양을 먹이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싶으셨던 동물은 양이었을까요, 아니면 어린 양이었을까요? 만약 예수님께서 의미 있는 차이를 드러내고 싶으셨다고 친다면, 그 차이를 분명하게 나타내기를 원하지는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세 명령형 동사 사이에도 분명한 차이가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먹이라’, ‘치라’, ‘먹이라’. 동사 ‘치다’는 사실 때때로 ‘먹이다’를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이 현상은 특히 70인역(구약성경의 헬라어 번역본)에서 나타납니다.
또한 요한복음 21장은 예수님께서 아가파오와 필레오 동사를 함께 사용하신 유일한 요한복음 본문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3장 35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라고 말씀하셨고, 요한복음 5장 20절에서도 동일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다만 전자에서는 아가파오 동사를, 후자에서는 필레오 동사를 사용하셨는데, 두 문장에는 의미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대화하시면서 근본적으로 다른 두 종류의 사랑을 말씀하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존 파이퍼(John Piper)는 아가파오 동사의 용례 중 몇 가지를 더 소개함으로써(이들 이외에도 언급할 수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이 단어가 모든 맥락에서 독특한 종류의 사랑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말합니다.
“가장 인기 있는 현대의 언어학적, 주해적 오류 중 하나는, 헬라어에서 사랑을 뜻하는 단어 아가파오가 인류의 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암시한다는 견해입니다.
이런 견해는 사실이 아닙니다. 문맥에 따라 아가파오는 한 패를 향한 우리의 자만하고 배타적인 사랑(마태복음 5:46),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롭고 자기희생적인 사랑(요한복음 3:16), 반드시 무조건적일 필요는 없지만 바로 리더들의 노동 때문에 가지는 사랑(데살로니가전서 5:13) 등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명확히 말씀드리자면, 신약성경이 특별한 종류의 사랑에 대해 언급한다는 명제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어느 경우에 그렇게 하는지 사전에서 헬라어 단어를 찾아보는 것만으로는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죠. 영어로만 성경을 읽을 수 있는 사람도 여전히 사랑이 뭔지 알 수 있습니다.
성경 공부를 위한 건설적인 조언
젊은 신학생에게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해석의 그릇된 정체를 폭로하는 것만큼 재밌는 게 있을까요? 하지만 오늘 제 목표는 파괴적인 비판이 아니라 건설적인 조언입니다. 제가 보기에 일반적으로 성도들이-특별히 열심히 연구하는 사람들이 더욱 그런 듯합니다-성경 속 문장들을 맥락에 맞게 읽는 것보다 성경 단어를 찾는 데 너무 많은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단어를 검색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건 아닙니다. 이 작업은 Logos가 참 잘해줍니다. 저도 항상 사전을 찾습니다. 그래서 예를 들어 “사랑”이 정말 무엇을 의미하는지 찾고 싶으시다면, 저는 사실 일반적인 헬라어 사전(BDAG)에서 (사전에 나오는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의미를 합친다면) 그 의미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을 향해 따듯한 감정이나 관심을 두는 것”, “어떤 것을 높이 사거나 그것으로 만족감을 얻는 것”, “아끼다, 애정을 갖다, 사랑하다, -로 부터 기쁨을 얻다”(출처).
하지만 여러분은 복음서에 나오는 부활 기사나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를 읽음으로써 ‘사랑’에 대해 훨씬 더 많이 배우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성경 본문들은 이 단어를 사용하지도 않지만, 이 본문들을 읽을 때 아가페를 사전에서 찾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우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두 가지 모두 하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그전에 기억하세요, 둘 중 하나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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