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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어 지베크(Mohr Siebeck) 인터뷰 시리즈: 김세윤 교수, “바울 신학과 새 관점: 바울 복음의 기원에 대한 재고”를 논하다

2019-05-01 by seanroh Leave a Comment

2017년 12월 28일 / by 타비스 볼링거(Tavis Bohlinger)

모어 지베크(Mohr Siebeck) 인터뷰 시리즈는 지난 수십 년간 바울을 연구한 가장 영향력 있는 저자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이 짧은 시리즈를 통해 마빈 페이트(Pate), 김세윤, 제임스 던(Dunn)과 같은 여러 탁월한 학자들의 견해를 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시리즈의 두 번째 인터뷰에서 저는 김세윤 박사와 그분의 새 책, 『바울 신학과 새 관점: 바울 복음의 기원에 대한 재고』(Paul and the New Perspective: Second Thoughts on the Origin of Paul’s Gospel)에 대해 대화 나눌 기회를 누렸습니다. 이 책은 본래 2002년 모어 지베크에서 바울, 유대교, 율법에 대한 관점 시리즈(15권 세트)로 출판되었는데, 지금  한글 Logos 성경 소프트웨어에서 “김세윤 박사 신학 저서 세트(전5권)“에 포함해서 판매중입니다.

김세윤 박사는 현재 풀러 신학교에서 한인 목회학 박사원의 부학장 및 신약학 교수를 맡고 있습니다.


1. 처음 성서학(그리고 구체적으로는 바울 연구)을 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처음 신학으로 대학원 공부를 시작했을 때, 제게는 조직신학자가 되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습니다. 석사 과정 첫 해에 수업 준비를 위해 책을 읽는데, 그때 저는 좋은 조직신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성서적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서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하기로 했고 특별히 바울 연구를 선택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제가 결국 다룰 조직신학 작업을 위한 최선의 준비 과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하지만 아직 그 단계로 “올라가지” 못했습니다!).

2. 『바울 신학과 새 관점: 바울 복음의 기원에 대한 재고』를 쓰시는 데 작용했던 자극은 무엇이었으며, 이 저서가 과거에 했던 연구 및 앞으로 하실 연구와 어떻게 연결될까요?

당연히 제게 자극이 되었던 것은 당시까지 지난 20년 동안 바울 학계를 지배했던 “바울 신학에 대한 새 관점”에 대한 비평적인 논의였습니다. 제가 이 책을 쓴 데는 개인적인 이유 역시 있었습니다. 제임스 D. G. 던은 바울 복음(특히 “하나님의 형상”/아담-기독론 및 칭의-구원론)의 기원이 다메섹 도상에서 개종될(혹은 소명 받을) 때 높이 들리신 그리스도가 계시하신 것에 있다는 저의 논문(The Origin of Paul’s Gospel [Mohr Siebeck, 1981, 1984; Eerdmans, 1982]; 『바울 복음의 기원』 [두란노, 2018])에 대해 강력하게 비판했는데, 저는 그에 대해 대응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던은 다메섹에서 일어난 그리스도의 현현은 바울이 이방인의 사도로 소명 받은 사건으로서 큰 의미를 갖지만,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칭의의 복음에 대한 계시를 준 사건은 아니라고 자기 논문에서 주장했습니다(“‘이방의 빛’인가 아니면 ‘율법의 마침’인가?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에게 나타나신 그리스도의 현현의 의미; “‘A Light to the Gentiles,’ or ‘The End of the Law’? The Significance of the Damascus Road Christophany for Paul” [본래 1987년에 출판되었으나, 1990년에 Jesus, Paul and the Law에 포함되어 재출간됨, Louisville: Westminster/John Knox]; 논문 제목에 “아니면”[or]이 있다는 점에 주목하라). 당시 저는 한국에서 교수 사역을 하고 있었고 본의 아닌 상황 때문에 오랜 시간 동안 그 비판에 대응할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미국 패서디나에 있는 풀러신학교로 자리를 옮긴 후에야 늦어진 답변을 제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바울 신학과 새 관점: 바울 복음의 기원에 대한 재고』의 가장 긴 장이자 첫째 장에서 제 주장을 방어합니다. 던이 제시하는 안디옥 논쟁에 가서야 (그만큼 늦게) 칭의 교리가 시작되었다는 주장 및 다른 “새 관점” 논지들에 반대하며, 저는 칭의 복음이 다메섹에서 일어난 그리스도의 현현에서 기원했으며,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름 받은 것도 그때라고 주장했습니다. 4장에서는 좀 더 광범위한 논의들을 통해서 제 주장을 더욱 뒷받침하는데, 이를 위해 주요 본문인 갈라디아서 3장 10-14절에 대한 던의 주해를 비판하고, 또 칭의가 가진 선교학적이고 교회론적인 의미를 추구하느라 법정적 의미를 무시해 버린 새 관점을 비판합니다. 저는 또한 5장에서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형상”이자 “마지막 아담”이라는 개념을 바울이 다메섹에서 그리스도의 현현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는 주장을 추가적인 논지들로 입증하려 합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던이 사실은 결국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리고 그렇게 비판해 놓고도!) 제 주장을 받아들였다는 기묘하고 아이러니한 사실을 드러냈습니다.

이 책에 있는 다른 대부분의 논문들(2, 3, 6, 7장)에서도 저는 제가 앞의 논문에서 다룬 바울의 복음과 이방인을 위한 사도직에 관한 주제들을 더욱 심화하였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장인 8장에서 저는 예수 전통(Jesus Tradition)을 바울이 어떻게 사용하고 반영했는지 살펴봅니다(이 장은 The Dictionary of Paul and His Letters [Downers Grove: IVP, 1993]에서 발췌하였습니다). 이 연구로 인해 저는 “예수-바울” 문제를 거의 저의 두 번째 “전공”으로 삼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 연구를 통해, 이전에 했던 복음서에서 나타나는 예수님의 인자 어록에 대한 연구의 도움을 얻어(The “Son of Man” as the Son of God [Mohr Siebeck, 1983; Eerdmans, 1985]), 바울 기독론 속에 “숨겨진 ‘인자’ 기독론”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바울 신학과 새관점』[Paul and the New Perspective] 5장, 194-208). 바울에게 예수 전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롭게 깨달은 저는 제 원래 주장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바울 복음은 다메섹에서 일어난 그리스도의 현현에서만 기원한 것이 아니라, 예수 전통에서도 기인했다고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논문의 공식 역시 다시 구성했습니다. 바울 복음의 아버지는 다메섹에서 일어난 그리스도의 현현이요, 어머니는 예수 전통이었습니다.

바울의 칭의 복음에 대한 저의 두 관심은 제 논문에서 시작되었고, 이는 새 관점 논쟁 및 바울 속에서 나타난 예수 전통에 대한 저의 평가를 통해 심화되었습니다. 그리고 두 관심사는 제가 현재 집필하고 있는 데살로니가전후서 주석에 반영되었습니다(WBC 성경 주석[Word Biblical Commentary Series]). 두 관심사는 또한 제가 얼마 전 저술한 짧은 책 역시 형성하였는데, 곧 출판사로 보낼 예정입니다. 이 책의 제목은 『바울의 칭의 복음과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Paul’s Gospel of Justification and Jesus’ Gospel of God’s Kingdom)입니다.

3. 출간된 박사님의 책이 바울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는 데 어떻게 기여했다고 보시나요? 그리고 좀 다르게 했거나 더 강조했다면 좋았으리라는 아쉬움이 남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저는 이 책이 바울 학계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봅니다. 확실히 제 첫 책인 『바울 복음의 기원』(The Origin of Paul’s Gospel)에 비하면 그러하죠. 사람들은 『바울 신학과 새 관점: 바울 복음의 기원에 대한 재고』를, 새 관점에 대해 비평적으로 다룬 20세기 마지막 몇십 년 및 21세기 첫 10년에 나온 수많은 책들 중 하나로 생각합니다. 두 책에서 나온 수고를 합친 것이 몇몇 새 관점 지지자들로 하여금 본래 갖고 있던 견해를 수정하도록 도울 수도 있습니다. 또한 그들이 기존에 갖고 있던 통찰들을 우리가 “옛 관점”이라 부르는 법정적 구원론 교리인 칭의 교리의 틀 안에서 통합할 수 있도록 도울 수도 있습니다.

특별히 던이 칭의 교리의 기원에 대해 가진 이해에 도전장을 던지면서, 저는 그에게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개종하고(혹은 사도로서 소명을 받고) 안디옥 논쟁이 있기 전까지 어떤 복음을 설교했다고 생각하는지 물었습니다. 다행히 던은 바울이 그리스도인이 된 순간부터 사도로서 일하던 기간까지 분명히 하나님의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칭의를 얻는다는 점을 분명히 가르쳤다고 명시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율법의 행위 없이 은혜에 의하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칭의”라는 바울의 공식이 예루살렘 공회 및 안디옥 논쟁에서야 나타났다고 고집했습니다. 저는 바울이 율법에 대해 매우 열광적이도록 훈련된 유대교 신학자였다가 (이 두 사건이 있기 훨씬 전에) 개종하여 이방인을 위한 사도가 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했을 때, 그의 견해가 매우 제멋대로이며 비현실적이라 느껴집니다. 던과 N. T. 라이트(Wright) 모두 자신들의 학술 저서에서는 바울 내에서 예수 전통이 갖는 중요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는 제 저서와는 별개로 이루어진 인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책 8장에 실어 다시 출판한 에세이의 가치를 라이트가 인정해 주니 이는 유쾌한 일입니다(라이트가 저술한 『바울과 하나님의 신실하심』(Paul and the Faithfulness of God)의 1104쪽 255번 각주 참조).

저는 너무 거칠게 비평적이라는 이유로 비판을 많이 받아 왔습니다. 특별히 던에 대한 비판 때문에 그런 비판을 받았습니다. 저에 대한 비판은 공정한 것이라 생각하고, 그에 따라 그 점에 대해 많이 후회하고 있습니다.

4. 박사님께서 글 쓰시는 과정에 대해서 조금 알려 주시겠습니까? 그리고 그 과정이 최정 결과물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요? (예를 들어 연구 학기나 연구년처럼 긴 기간에 글을 쓰시나요? 아니면 수업 사이에 생기는 15분들을 모아 쓰시나요?)

이 책의 6, 7, 8장은 제가 각각 논문집, 저널, 성경 사전에 기고한 것을 다시 출판하는 것입니다. 3-5장은 여름 방학 및 독일 본(Bonn)의 알렉산더 폰 훔볼트(Alexander von Humboldt) 재단의 도움(재단의 “재수용”[Wideraufnahme] 프로그램)을 받으며 튀빙겐에 머물렀던 1999년 가을에 썼습니다. 마지막으로 1-2장은 2000년에 수업들 사이에 썼습니다.

5. 이 책을 출판하기 위해 모어 지베크와 협력하신 과정이 어땠는지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가장 인정받는 출판사인 모어 지베크의 일류 시리즈인 분트(WUNT; Wissenschaftliche Untersuchungen zum Neuen Testament)에서 책을 세 권 낼 수 있었던 것이 제게는 큰 영예였습니다. 이 출판사에서는 학술적으로 뛰어나고 인쇄와 장정에 있어서 탁월한 책들을 출간해 왔는데, 이 점은 최소 제가 속한 성경 및 신학 분야에서 범접할 수 없는 모어 지베크의 우수성을 잘 보여 줍니다. 출판사 직원들이 보여 주는 친절함, 꼼꼼함, 효율성에 대해서는 제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6. 새 관점(및 소위 극단적 새 관점[Radical New Pespective]으로 불리는 사상) 이후 바울 연구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이라고 보시나요? 옛 관점으로 되돌아갈 것이라 보시나요, 통합될 것이라 보시나요,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것이 나올 것이라 보시나요?

저는 옛 관점과 새 관점 사이의 간극이 많이 좁혀졌다고 봅니다. 전자를 지지하는 사람 중 몇몇은 이제 유대교가 그 핵심적인 틀에서는 언약적 율법주의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특별히 최종 심판에 대해서는 그 틀 안에서 개인이 신실하게 율법을 지킴으로써 공로를 얻는다는 개념이 있었다는 점은 고수하지만요. 또한 몇몇 옛 관점 지지자들은 바울의 칭의 교리가 갖는 선교학적 및 교회론적 귀결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습니다. 새 관점을 지지하는 사람들 역시도 그들이 지금까지 칭의 교리가 갖는 법정적 구원론의 요소를 무시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두 관점의 장점을 통합할 필요가 있다고 여깁니다. (특히 N. T. 라이트의 작업들은 바울 복음의 정치적인 측면까지 통합함으로써 새로운 포괄적인 관점을 확립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습니다.)

M. G. 바클레이(Barclay)는 그의 최근 작인 Paul and the Gift에서 두 관점 모두 비평적으로 조사하고, 유대교를 정의하는 데 “언약적 율법주의”라는 개념을 쓰는 것이 얼마나 유용한지 따져 보고, 또 두 관점의 지지자들이 “은혜”에 대해 갖는 이해가 얼마나 정당한지 살펴 보았습니다. 바클레이의 작업은 지난 40년간 신약 학계를 지배해왔던 두 관점 사이에 존재해온 논쟁의 틀을 깨고 나온 예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 역시도 제가 곧 출간할 새 책 『바울의 칭의 복음과 예수의 하나님 나라 복음』에서 기독론과 인간론의 관점을 통합함으로써 칭의 교리에 접근해 보려 합니다. 이 책에서 저는 또한 옛 관점과 새 관점 모두 칭의의 직설법과 윤리의 명령법 사이에 있는 관계, 그리고 은혜로 받는 칭의와 행위에 근거한 심판 사이의 관계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는지 보여 주려 합니다. 옛 관점과 새 관점 모두 인간론적으로 혹은 인간중심적으로만 이 사안에 접근하지, 기독론적인 부분이나 하나님과 그의 아들 주 예수의 왕국의 관점을 인간론과 함께 고려하고 있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바클레이의 “은혜-선물의 인간론”만을 통한 접근법이 이러한 경향에서 예외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 주려 합니다.

제 연구가 선사할 수 있는 이차적인 결과물은 새 관점이 (그 운동이 시작된 초기에만 하더라도 큰 변화를 이룰 것 같았지만 사실은) 바울 복음에 대한 이해에 코페르니쿠스적인 혁명을 제공해 주지 못했다는 사실을 확정하는 데 있습니다. 대신 새 관점은 전통적인 주해에서 무시되었던 선교학적이고 교회론적인 차원을 강조함으로써 바울 복음에 대한 더 포괄적이고 문맥에 맞춰진 이해를 만드는 데 큰 기여했을 뿐입니다.

이와 같이 40년간 이어져 온 “옛 관점과 새 관점 논쟁”에서 얻어진 부정적인 통찰과 긍정적인 통찰들을 통해, 하지만 그 틀에서 자유함으로써, 미래의 신약 학계는 어쩌면 복음에 대한 더 낫고 더 관계있는 신선하고 새로운 접근 방식을 제안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바울이 설교하여 2,000년 전 고대 사회에 종교적 및 사회문화적 혁명을 일으킨 복음, 또 마르틴 루터가 자신의 새로운 해석을 통해 500년 전 중세 시대의 중교와 사회, 문화, 정치에 혁명을 일으킨 복음에 대해서 말이죠.


김세윤 박사의 『바울 신학과 새 관점: 바울 복음의 기원에 대한 재고』(Paul and the New Perspective: Second Thoughts on the Origin of Paul’s Gospel)는 현재 다른 김세윤 박사의 책들과 함께 “김세윤 박사 저서 세트(전5권)”로 판매 중이며, 한글 Logos 8 브론즈, 실버, 골드, 플래티넘에서도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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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라이트, “탁월한 성경 학자, 탁월한 신학자가 되는 비결”을 말하다!

2019-05-01 by seanroh 1 Comment

 

 

 

필자는 지금까지 다양한 성경 학자들에게 다음의 질문을 던져왔습니다: “어떻게 하면 탁월한 성경 학자, 탁월한 신학자가 될 수 있나요?” 앞으로 수년간(아니면 더 긴 시간에 걸쳐) 매주 월요일 이 질문을 던지고서 들은 답변을 여러분 앞에 풀어 보려 합니다. 오늘 Logos 학술 블로그(theLAB [the Logos Academic Blog])를 구독하시고 단 한 편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글쓴이 – 타비스 보힐린저(Tavis Bohlinger)

옮긴이 – 하늘샘

첫째 주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톰 라이트의 답변을 들려드리겠습니다.

 

–

 

(신약)성경을 연구하고자 하는 사람에게 저는 이런 조언을 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역사학자가 되려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므로 역사학자답게 우선 1차 자료에 대해 최대한 광범위하고 또 깊게 알아야 합니다. 헬라어 신약성경을 꿰고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칠십인역(및 히브리어 성경)을 꾸준히 읽어야 합니다. 또한 초대 기독교인들이 이 문헌들을 어떻게 읽었을지 상상해 봐야 합니다. 더불어 제2성전 유대 세계에 대해 알아야 하며, 당시 유대인들이 사해 사본, 요세푸스, 외경, 위경, 필론 및 (최소한) 초기 랍비 문헌을 어떤 방식으로 되찾았는지 이해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 시대와 연관된 비문(碑文), 파피루스 문서, 주화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마카베오부터 바르 코크바 그리고 그 다음 시대까지의 역사에 정통해야 하며, 여러분 자신이 그 세계에 살고 있다고 계속 상상해 봐야 합니다. 역사학자에게 가장 중요한 과업은 우리와 다른 방식으로 사고했던 사람들의 머리 속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시대 사람들의 두뇌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야말로 여러분이 평생 몰두하고 즐거워해야 할 작업입니다.

 

다음은 신학입니다. 신약성경을 공부한다고 말하면서 성경의 주제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는 없겠죠? 여러분은 제2성전 시대 사람들이 하나님/신/신들, 세상, 인간, 윤리, 예배 등을 이해한 방식을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 방식에는 (실제로 존재하지는 않았던) “순도 100%” 이교 사상에서부터 위대한 철학 사상들, 유대교 세계관들까지가 포함됩니다. 결국 여러분은 초대 기독교인들이 세상을 이해한 방식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여러분은 이 시대 사람들이 자신들을 어떤 광범위한 담론 속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했었는지 계속 알아봐야 합니다. 위 작업들을 위해 여러분은 최소 이레네우스와 터툴리안의 시대까지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몇몇 후기 기독교 신학자들이 (성전, 토라, 광대한 유대교 내러티브들과 같은) 신약성경 저자들이 속해있던 유대교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삼위일체, 기독론, 속죄 등과 같은) 신약성경과 동일한 메시지를 그 시대에서 읽어내려고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아타나시우스에서부터 아퀴나스까지, 또 칼빈에서 바르트까지, 그리고 그 이후의 신학들은 모두 풍성한 보물 창고입니다. 그러나 조심해야 합니다. 이 신학자들은 모두 자기 신학이 “성경적”이라고 주장하지만, 이 주장이 사실인지 확인하고, 그들의 신학을 주기적으로 찔러보고, 또 필요하면 그들의 논지에 이의를 제기하기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그리스도인, 유대인, 무슬림, 그리고 무신론자에게라도 동일하게 들려드렸을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성경과 신학을 공부하는 그리스도인에게만 특별히 다음과 같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한편으로는 개인적으로 성경을(특별히 시편을) 읽으시고, 기도하시고, 규칙적으로 교회의 성례 예배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어떤 형태로든) 가난한 사람을 섬기시기 바랍니다. 이 모든 것이 여러분을 한 인격체로서 성장시켜 나갈 것이며, 여기에는 당연히 사유하는 사람으로서의 성장이 포함됩니다. 어쩌면 이러한 활동의 열매를 당장 보지 못할 수도 있고, 어쩌면 영영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활동들은 여러분의 역사 연구와 신학 연구 가운데, 성령님의 생기가 넘치는 인생을 만들어 내고 또 유지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여러분이 완벽해지거나 절대 실패하지 않을 신학자나 역사학자가 되지는 않겠지만, 이런 삶은 여러분을 여러 적절한 방향으로 인도해 줄 것입니다. 더불어 어려운 작업을 수행하다가 (모두가 그러하듯이) 실패했을 때 용기를 줄 뿐 아니라, 정말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 예외적인 상황에서도 겸손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톰 라이트, 신약성경 및 초기 기독교 교수, 세인트 앤드류스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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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사해 사본에 관심을 가져야 할까요?

2017-05-08 by seanroh Leave a Comment

히브리 대학과 로고스 더랩(theLAB)의 크레이그 에반스가 발표한 내용 때문에 지난주가 떠들썩했습니다. 바로 열두 번째 사해 사본(DSS) 동굴이 지난달 발견되었다는 발표였는데요.

 

그렇지만, 도대체 왜 사해 사본이 중요한 걸까요? 제가 아래에서 세 가지 주된 이유를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렇지만 그전에, 우선 사해 사본이 무엇인지 살펴봐야겠습니다.

글쓴이 / Tavis Bohlinger

옮긴이 / 하늘샘

사해 사본은 무엇일까요?

 

‘사해 사본’이라는 용어는 사실 여리고에서 마사다로 이어지는 이스라엘 땅 일부 지역(직진 거리로 40마일 정도 거리)에서 발견된 풍부한 고고학적 보물들을 가리킵니다. 이 보물들은 기원전 4세기부터 기원후 2세기까지에 속하는 물건들입니다. 이 지역에 살았던 여러 거주민들이 자신의 흔적을 남겨놓고 떠났는데, 놓고 간 물건에는 고대 폐허, 항아리, 동굴, 양피지, 파피루스 종이, 리넨 옷감, 동전, 도구 등이 있습니다.

 

발견 역사

1946년 연말 아니면 1947년 연초 어느 날, 15세 양치기 소년이 잃어버린 양을 찾다가 와디 (우기 때 외에는 물이 없는 하천- 편집자 주) 혹은 협곡으로 들어갔습니다. 절벽에 위치한 동굴의 입구에 돌을 던졌더니 항아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고, 양치기는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여기서 양치기가 찾고, 가족에게 보여주기 위해 가져갔던 사본들이 현대 성서 고고학의 가장 중요한 발견 중 첫 번째 발견이었습니다. 이 와디가 바로 사본이라는 보물 대부분이 발견된 곳이며 지금은 와디 쿰란으로 유명해진, 사해의 북서쪽 해변에 위치한 곳입니다.

 

1940-50년대에 현지 및 서양 탐험가와 고고학자들이 이 지역을 샅샅이 발굴했습니다. 수백 개의 동굴을 탐사했지만 단 열하나의 동굴에서만 지금 사해 사본이라 부르는 보물들이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사해 사본이 나타난 동굴 숫자는 랜달 프라이스(Randall Price), 오렌 거트필드(Oren Gutfeld), 아히아드 오바디아(Ahiad Ovadia)가 최근 펼친 고고학 작업 덕분에 열두 개로 늘었습니다. 아쉽게도 글이 적힌 통째 사본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항아리 조각, 양피지, 파피루스, 천 덮개를 보아 이 열두 번째 동굴은 확실히 다른 열하나의 동굴과 나란히 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해 사본

지금까지 열두 동굴에서 600개의 사본이 발견되었습니다. 4번 동굴에 가장 집중된 양이 있었는데요, 100개의 성경 사본을 포함한 400개의 사본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이 동굴에서 나온 사본 중 포함되지 않은 구약 성경은 에스더 밖에 없습니다. 사해 사본에서 발견된 가장 대단한 보물 중 하나가 대이사야서(1QIsa)로 알려진 거의 온전한 이사야서 사본입니다. 사해 사본 내 성경 자료는 구약 성경의 본문이 어떻게 전파되었는지에 대한 중요한 자료입니다.

 

하지만 성경 자료는 이 문서의 더 작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사해 사본에는 많은 양의 외경과 위경 저작들이 있습니다. 토빗, 집회서, 예레미야의 편지, 에녹1서, 희년서, 레위의 유년 등이 그 예시입니다. 이뿐 아니라 쿰란의 종교 공동체의 생활 양식을 다루는 소위 쿰란 종파 문서라 불리는 것들이 있는데, 여기에는 훈련 교본(the Manual of Discipline)과 감사 찬송(the Thanksgiving Hymns)이 포함됩니다.

 

마지막으로 사해 사본에는 구약의 다양한 책에 대한 주석이 있는데, 하박국 주석이 그 예시입니다. 이 주석에는 쿰란 공동체가 가졌던 해석 방식에 대한 흥미로운 통찰이 들어있습니다. 쿰란 공동체는 절별 분석 방식을 채택했으며 악한 제사장에게 핍박받는 “의의 교사(The Teacher of Righteousness)”를 중심으로 성경을 해석합니다.

사해 사본이 고고학적이고 역사적인 측면에서 재밌다고는 해도, 왜 사해 사본이 오늘의 성경 신학자들에게 중요한 걸까요?

 

왜 사해 사본이 중요할까?

우리는 다음의 세 가지 입장에서 사해 사본의 중요성을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본문, 사람, 해석학

 

본문 전수의 역사

첫째, 사해 사본은 성경 전수의 역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사해 사본은 현재 구약 성경의 가장 오래된 사본으로서, 1946년 발견된 사본보다 거의 천 년 가까이 오래되었습니다. 이 사실은 그 자체로도 큰 의미를 갖지만, 더불어 사해 사본은 70인역이나 마소라 본문과 같은 사본과 비교하여 학술적인 문법 차이, 구두점, 철자를 연구할 수 있으며 더불어 중간기 기독교 이전 유대교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는 데 도움을 줍니다.

 

확실히 사해 사본이 제공하는 가장 중요한 본문 비평적 기여는 사해 사본 덕분에 구약 본문의 마소라 본문이 얼마나 일찍 형성되었는지 알 수 있다는 점입니다. 사해 사본이 발견되기 전에는 마소라 본문이 아무리 빨라도 기원후 2세기에 속하였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보다 수세기 앞선 자료라고 보는 사람이 많아졌지요.

 

그래서 이제 현대 성경 신학자들은, 자신만의 비평본을 사용하든 다른 방법을 사용하든, 자신들이 다루는 본문이, 수세기전 하나님을 향한 정당한 열정으로 뭉친, 실제 사람들이 충실하고 정확하게 전해준 본문이라는 데 더 큰 신뢰를 갖고 작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역사 속 실존했던 사람들

이 지점에서 우리의 두 번째 의견으로 이어집니다. 사해 사본 뒤에는 그것을 만든 실제로 존재했던 사람이 있었으며, 그들이 이 두루마리에 그들의 흔적을 남겨놓았다는 거죠. 쿰란 공동체가 살았던 방식을 기록한 글로는 훈련 교본(the Manual of Discipline)이 있으며, 그들에 부른 찬송은 감사 찬송(the Thanksgiving Hymns)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해 사본은 피와 살을 가진 진짜 사람이 한 때 이 지역에서 살았다는 중요한 사실, 그리고 그들만의 독특한 구약 해석을 엄격하게 붙잡고 살았다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자료입니다.

 

이들에게 성경은 삶과 죽음을 가르는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얼마나 이 성경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던지 이스라엘의 사막 지역에 살기를, 예루살렘의 성전으로부터 떨어져 있기를 자처하였죠. 이런 행동 자체가 당시 흔히 볼 수 있던 유대교로부터의 근본적인 탈출이며, 신약 저자들의 근본적인 성경 해석만이 이에 대등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대의 성경 해석

이 지점이 해석학에 관한 저희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주장으로 이어집니다. 재밌는 비교를 하나 해볼까요? 쿰란 공동체가 유대교의 한 형태를 실천하기 위해서 고대 팔레스타인의 불모지로 이동한 반면, 기독교 공동체는 -그리스도를 유대인들이 오래 기다려온 메시아로 여겼기에- 처음부터 고대 회당에 머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두 공동체 모두 자신들이 어떻게 일상과 내세를 이해할지 형성하고 알려주는 데 독특한 구약성경 이해 방식을 의지하였습니다.

 

우리가 사해 사본의 비성경 문서(성경 필사본이 아닌 글들-역자 주)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경건한 유대인들이 자신이 살았던 시대에 맞게 구약의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입니다. 쿰란 공동체의 사람들이 다양한 구약 성서에 달았던 주석과 공동체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기록한 문서는, 오랜 시간 전에 살았던 사람들에게 성경이 얼마나 강력한 존재였는지 확실히 보여줍니다. 하지만 쿰란 필사가들이 보여준 해석 방식과 신약성경 저자들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바로 거기에 의미있는 사해 사본 연구의 위대한 가능성이 있는 거죠.

 

사해 사본이나 신약성경에 대해 학술적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서로를 함께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해 사본을 고려하지 않은 상태로 진정한 신약성경 연구를 했다고 볼 수 없고, 또 그 반대의 상황도 있을 수 없습니다. 사해 사본과 신약성경 모두는 예수님 시대까지의 그리고 예수님 시대의 유대교에 대한 아주 중요한 증거입니다. 사해 사본과 신약성경은 다양한 주제에 대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 주제로는 예수님의 어록, 로마 점령 기간 중 메시아에 대한 기대들, 제2성전 시기에 “은혜” 개념 등이 있습니다. 이 마지막 주장의 특별히 좋은 예시로는 최근 존 바클레이(John Barclay)가 출간한 Paul and the Gift라는 책이 있는데요, 이 책에서는 사해 사본이 바울이 제시하는 하나님의 카리스(charis) 혹은 은혜의 주요 대화 상대로 등장합니다.

 

사해 사본이 당신에게 의미 있는 이유

요약하면, 사해 사본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 고대 팔레스타인의 시대에 있었던 유대교 중 적어도 한 단체의 문서, 사람, 해석 방식을 보여주는 필수적인 증거입니다. 최소한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쿰란 공동체의 역사와 가르침과 친해져야 할 이유가 있는 셈입니다.

 

사해 사본 공부에 입문하기 위해서 제가 개인적으로 추천드리는 방법이 있습니다. 우선 The Dead Sea Scrolls in English에 있는 고전적인 게자 베르메스의 사해 사본 번역본과 개론 부분으로 시작하시는 겁니다. 최근에 소개된 소개글 중 유용한 자료로는 조셉 피츠마이어의 The Impact of the Dead Sea Scrolls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 두 자료 모두 Logos 7에서 관련 자료와 연결되어 있으며 검색 가능한 자료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자료 외에도 많은 사해 사본 자료가 Logos 7에 있습니다. (한글 제품 패키지도 살펴보기)

 

그렇지만 사해 사본 번역본을 읽고 개론 지식을 익힌 이후에는 어떻게 더 깊이 있는 연구를 할 수 있을까요? 이 내용은 다음 포스팅에서 살펴보겠습니다.

 

더랩(the LAB)을 구독하시는 것은 어떨까요? 더랩을 통해서 쿰란 공동체에 대한 최신 소식을 접할 수 있으며, 성경을 학술적으로 연구하는 것과 관련된 모든 주제에 대해 전세계 성경 학자가 쓴 설득력 있는 글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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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만에 사해 사본 제12동굴 발견

2017-02-11 by seanroh Leave a Comment

scroll_fragment-e1486573905477사진 제공: 랜달 프라이스(Randall Price)

크레이그 A. 에반스 박사(Ph.D, 하빌리타치온)님은 텍사스 남쪽의 휴스턴 침례교 대학교에서 기독교 기원 분야의 John Bisagno 교수님으로 계십니다. 에반스 박사님은 역사적 예수, 사해 사본, 고고학 분야에 대해 광범위한 저술 활동을 하셨습니다. 박사님은 최초로 사해 사본을 직접 본 첫 학자들 중 하나였던 윌리엄 휴 브라운리(William Hugh Brownlee)의 사사 아래 박사 학위를 취득하셨습니다. 에반스 박사님은 성경 박물관 내에서 고대 성경 유물의 의미를 다루는 Scholars Initiative의 일원입니다. 에반스 박사님은 또한 여러 편의 Faithlife Mobile Education 강좌도 개설하셨는데, 이 중에는 호평을 받은 시리즈인 “고고학과 예수”(Archaeology and Jesus)라는 강좌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새 동굴의 옛 논쟁: 이스라엘에서 일어난 놀랍도록 새로운 발견은 식었던 토론에 다시 불을 지필 것입니다

 

글쓴이 / 크레이그 A. 에반스

옮긴이 / 하늘샘

 

와디 쿰란 출입구에 위치한 이회토 대륙붕과 관련된 마지막 사해 사본 동굴은 1956년에 발견되었습니다. 이 동굴의 발견을 마지막으로 총 11개의 동굴이 발견되었고, 이 동굴에는 유명한 사해 사본들, 도자기 항아리 그리고 여러 유물이 있었습니다.

 

Logos로 사해 사본 연구 해보기. >>

 

지난 60년동안 고고학자들과 도굴꾼들은 12번째 동굴을 찾아다녔습니다. 과연 그 동굴이 나타날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을 거라 예상했습니다. 새로운 동굴에 대한 부정적인 예상 때문에 제12동굴이 발견되었다는 이번 히브리 대학교의 발표가 더욱 놀랍습니다!

2     사진 제공: 랜달 프라이스(Randall Price)

 

흙장난이나 하다가…

현재 리버티 대학 교수님이신 랜달 프라이스(Randall Price) 씨는 “사해 사본 작전(Operation Scroll)”의 자원봉사자 중 한 명입니다. 프라이스 씨는 1993년에 간략하게 조사 작업이 이루어진 53번 동굴에 시선이 끌렸습니다.

 

프라이스 씨는 작년에 그 동굴을 발굴할 수 있는 허가를 얻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히브리 대학의 오렌 거트필드(Oren Gutfeld), 아히아드 오바디아(Ahiad Ovadia) 및 여러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발굴에 착수했습니다. 자원봉사자 중 한 분이시며 성경 박물관(the Meseum of the Bible)의 대표이신 캐리 서머스 씨(65세)가 오는 11월 자신의 전시물과 광범위한 소장품을 대중에게 공개한다고 합니다.

 

캐리는 최근 제게 보낸 이메일에서 “흙장난에는 나이가 중요하지 않아”라고 말했습니다. 저 역시 흙장난이라면 베테랑이기에 그분의 의미를 이해했고 저 역시 그 말에 동의합니다. 캐리는 갖고 놀기에 최적인 흙더미를 발견한 셈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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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랜달 프라이스(Randall Price)

지금 Logos에서 사해 사본에 대해 연구해보세요. >>

 

제12동굴에서 발견된 것들

프라이스 씨와 그의 팀은 정말로 대단한 것들을 발견했습니다. 물론 고고학자들과 프라이스 씨의 팀이 발굴한 이 동굴은 이미 다른 사람이 한번 뒤졌던 곳입니다 (그래서 도굴꾼들이 흘리고 간 곡괭이가 남아있었죠). 하지만 이전에 들른 사람들이 완전히 파내지 않은 부분에 중요한 유물이 남아있었습니다. 프라이스 씨와 그의 팀이 다른 여러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항아리와 동일한 항아리를 일곱 개나 찾았기 때문입니다. 이 도자기 항아리들은 사본을 담는 용기였습니다.

 

다른 사본보다 잘 보존된 사본들의 상태를 보면, 이 항아리들이 사본 보관을 위해서 제작되었다는 기존의 통설이 더욱 신빙성 있어 보입니다. 발견된 사본 항아리의 대부분은 예루살렘의 “책의 전당(Shrine of the Book)”과 베들레헴의 칸도 골동품 상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많은 사해 사본들이 이 도자기 항아리에 한 때 보관되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 사람이 많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 가설을 지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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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랜달 프라이스(Randall Price)

 

고대 자료에 등장하는 사본 항아리

실제로 도자기 항아리가 이러한 목적으로 사용되었다는 기록을 고대 자료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주 먼 옛날 예레미야 선지자는 “매매 증서를 곧 봉인하고 … 토기에 담아 오랫동안 보존하게 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예레미야 32:14). 1세기 외경 자료에서 모세는 이런 명령을 받았습니다. “이 문서를 받아라. 그리하여 내가 위탁할 책을 어떻게 보존할지 나중에 기억하도록 하라. 너는 그것을 배열하고, 향나무로 칠하고 토기 항아리에 넣어두라 …” (“모세의 언약”, 1:16-17).

 

현대에 들어와서 사해 사본이 발견되기 훨씬 전에, 사해 근처에서 다른 고대 사본들이 발견되었습니다. 4세기 교회 역사가 에우세비우스에 의하면, 3세기 사람 오리게네스가 알려지지 않은 방법으로 “여리고에서 발견된 항아리” 속에 있던 성경 사본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교회사』, 6.16.3).

 

우리는 오리게네스가 얻은 사본이 1947년과 1956년 사이에 쿰란과 그 주변에서 발견된 유명한 열하나의 동굴에서 부분적으로 보존된 고대 서재에서 나왔는지 절대 알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적어도 항아리에서 사본이 발견되었다는 기록은 이런 고대의 관행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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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 거트필드(Oren Gutfeld)와 아히아드 오바디아(Ahiad Ovadia)의 동굴 속 모습. 사진 제공: 케이시 L. 올슨(Casey L. Olson), 오렌 거트필드

 

제13동굴, 발견될 조짐이 보일까요?

믿기 어렵겠지만, 프라이스 씨와 그분의 팀은 열두 번째 동굴을 발견한 것처럼 보입니다. 사해 사본 학자들이 60년간 꿈꿔온 일이 일어난 거죠. 하지만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프라이스 씨는 쿰란 유적지 근처에 제13동굴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십니다. 최근 발견된 제12동굴과는 다르게, 제13동굴로 추정되는 장소의 입구는 막혀있습니다—이는 이 동굴이 아직 도굴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지요. 만약 그렇다면, 더 많은 사본이 발견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사본이 등장한다면, 우리가 어떤 새로운 내용을 배울 수 있을지 누가 짐작할 수 있을까요?

 

물론 수십년간 새로운 사본이 간간이 발견되기는 했습니다. 이 사본들은 대개 베두인족이 갖고 있던 것으로, 그 발견 시기가 1940년대와 1950년대에 적극적으로 이루어진 탐사와 조사 기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이 사본 조각들이 원래 어느 동굴에 있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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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랜달 프라이스(Randall Price)

 

양피지, 파피루스, 리넨!

바로 이 지점에서 프라이스 씨와 그 팀의 발견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 지점 때문에 발견된 동굴이 쿰란의 제12동굴이 되는 것입니다. 더불어 복구한 여섯 개의 사본 항아리 뿐 아니라, 작은 양피지 및 파피루스 파편 몇 개와 사본을 감싸는 데 사용된 리넨이 최소 하나가 발견되었습니다.

 

도자기를 과학적으로 검토하고 나면, 이 발견이 그 유적지 및 쿰란 그리고 근처 동굴에서 발견된 항아리와 어떤 관계를 갖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양피지 DNA 시험이 이루어지면, 아직까지 시기가 결정되지 않은 다른 사본들과 어떤 관계를 갖는지 알게될 것입니다. 항아리와 리넨 싸개가 있었다는 건, 사본들이 이 동굴에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제8동굴에도 같은 결론이 적용되겠지요).

 

이는 실로 신나는 사건입니다. 덧붙이자면, 새로운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다른 유물들은 고고학자들에게도 흥미거리가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프라이스 씨와 그분의 팀이 화살촉과 칼을 포함한 신석기 시대 유물도 발견했기 때문이지요.

 

여러 세계를 한 코에 꿰어보기

사해 동굴들과 유적지 그리고 쿰란 사본이 중요한 이유는 이들이 구약과 유대인들의 세계를, 예수님, 기독교 교회, 신약 문서의 세계와 이어주기 때문입니다. 사해 근방에서 이루어진 이 발견들은 또한 성스러운 문서들을 구체적인 증거들과 연결짓습니다. 문서들은 구체적인 증거들을 분명하게 해주고, 구체적인 증거들은 문서들을 분명하게 해줍니다.

 

고고학적 증거가 보여주는 것은 우리의 오래된 경전이 들려주는 고대 내러티브가 상상 속 세계나 픽션이 아닌 실제로 존재했던 세상을 반영한다는 점입니다. 지난 세기 즈음에 수많은 사본들을 찾아내준 고고학 덕분에, 우리는 이제 고대 문서들이 실제 사람, 실제 장소, 실제 사건에 대해 다룬다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예수 시대의 유대교

쿰란 사본은 예수님 시대의 유대교에 대해서 그리고 예수님 및 그의 초기 제자들의 구체적인 가르침에 대해서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제4동굴의 아람어 사본은 “하나님의 아들” 그리고 “지극히 높은 분의 아들”이라고 불릴 미래의 존재가 “위대하게” 되어 영원히 다스릴 것이라고 기록합니다. 이 문서가 누가복음 1장의 수태 고지와 병행한다는 사실은 자명해 보입니다. 제4동굴의 또 다른 사본에서는 곧 나타날 하나님의 메시아가 눈먼 자를 보게하고, 다친 자를 치유하고, 죽은 자를 살리고,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선포할 것을 기대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본문은 세례 요한에게 대답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명백히 병행합니다.

 

바울이 사용했던 “율법의 행위” 용어에 까지도 제4동굴에서 발견된 율법 문제를 다루는 편지와 중요한 병행 지점이 있습니다. 제11동굴에서 발견된 멜기세덱 사본은 죄를 용서하고 치유하며 사탄을 꺾을 능력을 가진, 하나님 자신으로 보이는 존재가 나타날 것을 예측합니다. 이런 예시들을 보면 — 실제로 더 많은 예시가 있습니다 — 사해 사본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당연하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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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랜달 프라이스(Randall Price)

 

다시 불붙은 옛 논쟁

여기서 당연히 예측되는 결과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새로운 발견으로 인해 누가 사해 사본의 소유권을 갖는가라는 논쟁이 거의 반드시 다시 시작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합당한 주인일까요(처음 발견되었을 때 쿰란은 요르단의 일부였습니다)? 아니면 팔레스타인 사람이 주인일까요? 바로 뜨겁게 논의되던 이 정치적 문제 때문에 새로운 발견이 탄생했습니다.

 

새 사본 동굴을 위한 조직화되었으며 허가받은 탐사는, 서안 지역(West Bank) 소유권에 대한 갈등과 유명한 사해 동굴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시작되었습니다. 사해 동굴은 “20세기 가장 중요한 고고학적 발견”이라고 묘사할 수 있을 정도로 (특히 유명한 사해 사본을 포함하여) 지금까지 천 개에 달하는 문서들이 발견된 곳이기 때문이겠지요.

 

이스라엘은 이 황폐한 지역에 대한 접근권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때문에 1993년에 “사해 사본 작전”을 개시합니다. “사해 사본 작전”은 (IAA 청장인 아미르 드로리의 지도 하의) 이스라엘 고대 유물청(Israel Antiquities Authority, IAA) 요원들, 이스라엘 방위군, 많은 고고학자들과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되었으며, 북쪽으로는 여리고 지역을 포함한 사해 서안 지역을 따라 위치한 수백개의 동굴들을 탐사하고 그 결과를 기록하였습니다. 몇몇 잡동사니들이 발견되었지만, 아주 중요한 발견은 없었으며 최소한 사해 사본 동굴로 여길 수 있을 동굴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1. “사해 사본 작전”에 대한 보고 자료를 원하시면, Neil Asher Silberman, “Operation Scroll,” Archaeology 47/2 (1994) 27–28; idem, “Operation Scroll,” in K. D. Vitelli (ed.), Archaeological Ethics (London: Altamira Press, 1996) 132–35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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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랜달 프라이스(Randall Price)

 

새로운 보물, 새로운 문제

이 중요한 발견의 세부적인 내용까지 저와 공유해주신 프라이스 박사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 역시 그분과 함께 제12동굴이 마지막 쿰란 동굴이 아닐 것이라는 소망을 품고 있습니다. 어느 누가 새로이 발견될 보물에 대해 알 수 있을까요? 어느 누가 이 새로운 발견이 야기할 새로운 정치적 문제에 대해 알 수 있을까요? 우리는 참으로 흥미로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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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동굴을 배경으로 서 있는 에반스 박사의 모습. 사진 제공: 랜달 프라이스(Randall Price)

 

에반스 박사님의 탁월한 온라인 교육 강좌를 소개합니다: “고고학과 신약 성경”, “사해 사본과 신약 성경”(Archaeology and the NT, The DSS and the NT). 그리고 현재 새로이 개발 중인 강좌로는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 고고학: 예수님과 고고학”(Archaeology in Action: Jesus and Archaeology) 이 모든 강좌는 Logos에서만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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