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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략해서는 안 될 감탄사, “보라!”, “볼찌어다!”

    마태복음 2장에는 세 번의 “보라!” 라는 감탄사가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성경에는 이 세 번이 다 번역이 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는지 참 궁금합니다.

    “보라!”라는 감탄사는 “우우와!”, “이야!” 등으로 바꿔도 좋을 듯합니다.

    이런 감탄사는 “점잖지” 않아 보여서 점잖은 우리 민족의 성향에 맞지 않아서 피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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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탄사를 잘 살려서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이뤄 가시는 구원의 역사에 정말 놀라고 감탄할 뿐임을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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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이야!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이스라엘도 아무도 모르는데, 우와 정말 신기하네. 동쪽 나라 점쟁이들이 어떻게 알았을까?”

    * 출처: 이운연. (2017). 우리말 성경번역, 그 뒷 이야기, 그리고 앞 이야기: “보라!” 이 감격을 왜 뺐을까? (마태복음 2:1–13). 매거진 Re, 51, 3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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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Q. 우물가의 여인은 몇 시에 왔을까?

     

    요한복음 4장을 읽다보면 이런 부분이 나옵니다.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요 4:6)

     

     

    여기서 “여섯 시”가 몇 시일까요?

     

    낮 12시요?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을 오래한 교인이라면, 이 “여섯 시”가 유대인의 시간 체계에 따라 낮 12시, 즉 정오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사마리아 여인이 정오에 남몰래 물을 길으러 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요한복음이 다른 공관복음(마태, 마가, 누가복음)과 다른 시간 체계를 사용했다면 어떨까요?

     

    한글 LOGOS에 수록된 매거진 RE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의 두드러진 차이들 가운데 하나는 시간 기술 방식이다.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은 다른 시간 기술 방식을 가지고 있다 . . . . . .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의 시간 기술 방식의 차이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황원하. [2013]. 신약성경 배경 시리즈: 우물가의 여인은 몇 시에 우물에 왔을까? – 신약 시대의 시간 체계. 매거진 Re, 5, 8.)

     

    저자가 말하는 공관복음과 요한복음의 시간 기술 방식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그렇다면 이 사마리아 여인이 정오에 물을 길으러 온게 아니란 말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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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울은 실제로 언제 사역했을까요?

     

    신약 성경을 읽다보면 늘 궁금합니다.

    바울이 언제 로마로 이동한 것일까?

    서신서는 언제 어디에서 기록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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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가페’의 진짜 의미

     

    글쓴이 – 마크 워드(Mark Ward)

    옮긴이 – 하늘샘

     

    ‘사랑'(Love)이란 단어는 메리엄-웹스터 인터넷 사전에서 세 번째로 가장 많이 검색되는 단어입니다. 혹시 ‘사랑’의 의미를 알고 싶으신가요? 알고 싶으셔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권위로 성경의 가장 중요한 두 명령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이죠.

    어쩌면 여러분은 이미 아가페(agape, ἀγάπη)가 헬라어 신약성경에서 사랑을 의미하는 기본적인 단어라는 것을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여러분은 이 단어가 특별히 (우정과 같은 사랑을 뜻하는 필리아[philia, φιλία]와는 반대인) 이타적이고 자신을 내어주며 감정이 아닌 사랑을 의미한다고 들으셨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이렇게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주장하는 바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자 하며, 성경 공부에 어떻게 헬라어를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보여드리기 원합니다. 더불어 제가 지금 가르쳐 드리는 방법을 사용해 아가페의 의미가 주로 등장하는 본문을 해석해 보겠습니다.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모르는 사람은 어떻게 원어를 이해해야 할까?

     

    언어학자이자 신학자인 모이세스 실바(Moisés Silva)는 우리에게 성경을 조심스레 읽기를 권면합니다. 그렇지만 너무 꼼꼼하게, 혹은 잘못된 방식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영감을 불어 넣으신 글에는 당연히 의미가 넘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속 단 한 단어도 무의미하거나 삭제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길 수 없습니다. 이 명제 자체는 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언어로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절대 잊으면 안 됩니다. 성경 해석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는 책이나 설교 중 많은 부분이 하나님께서 암호를 사용하셨거나, 혹은 인위적이거나 심지어 비밀스러운 언어를 사용하셨다고 암시합니다. … 우리는 다음의 기본적인 원칙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 위해서 선택하신 자연스럽고 단순한 형식 자체가 성경의 메시지에 있는 풍요로움이나 하나님께서 왔다는 사실을 손상하지는 않을 거라는 원칙을 말이지요.”

    “하나님으로부터, 언어와 성경: 일반 언어학의 관점으로 성경 읽기”(From God, Language and Scripture: Reading the Bible in the Light of General Linguistics), 모이세스 실바(M. Silva) 편집, 『현대 해석의 기초들』(Foundations of Contemporary Interpretation)(pp. 200–201).

    솔직히 말씀드리면,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모르는 상태에서 이런 성경 공부 방법을 적용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다고 원어를 아신다고 해서 이런 유혹에 빠질리가 없다는 건 아닙니다!) 원어를 아는 사람, 원어를 모르는 사람, 원어를 모르지만 Logos 성경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은 모두 성경을 읽을 때 원어가 성경 연구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제대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역할이란, 대개 단어의 의미보다는 문장 구조 및 논증과 관계가 있습니다.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사용하여 도달하려는 목표는 주로 성경 단어의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진짜 의미를 찾아보는 데 있지 않습니다.

    탁월한 복음주의 구약학자 월터 카이저(Walt Kaiser)의 의견을 들어봅시다.

    “헬라어 및 히브리어 연구는 2-4시간 만에 배울 수 있는 기술, 즉 단어를 파싱하고 사전, 용어 색인(concordance), 또는 분해 자료에서 단어를 찾아보는 것 이상의 기술입니다. 진정한 원어 연구는 원어 구문을 통해서 의미의 ‘맥락들(실타래, threads)’을 찬찬히 따라가는 작업입니다. 제대로 된 원어 이해는 생각의 단위들이 연결되는 ‘이음매’나 ‘솔기’를 드러낼 수 있지만, 번역 성경은 그럴 수 없습니다. 이렇게 본문의 구문 속에 있는 이음매를 따라가는 작업이 하나님의 말씀이 가진 원래 권위를 반영하는 설교를 만드는 데 꼭 필요한 작업입니다.” (출처)

    저 역시 성경 교사로서 돌아가신 헬라어 문법학자이자 신학교 교수인 로드 데커(Rod Decker)가 알려준 지혜를 따라 살기 위해 노력합니다.

    “저는 종종 제 학생들에게 얘기합니다. ‘만약 영어 성경으로 지역 교회 청중에게 본문의 의미를 설명하지 못한다면, 지금 제시하는 그 의미가 합당한지 한 번 더 생각해봐야 한다.’” (출처)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다시 사랑이라는 단어로 돌아옵시다. 요한복음 21장은 데커 박사가 말하는 완벽한 예시를 보여줍니다. 저는 제가 대학교 1학년 때 이 본문 속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나눈 유명한 대화의 실체를 밝히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비밀 헬라어 열쇠를 받았던 것을 기억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세 번 물어보십니다.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이에 베드로는 매번 대답합니다. “네, 저는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저는 당시 약하고 불분명한 영어 단어 ‘사랑'(love) 뒤에 아가파오(ἀγαπάω)와 필레오(φιλέω)라는 헬라어 단어가 숨겨져 있다고 들었습니다. 나아가 저는 두 헬라어 단어가 완전히 다른 두 종류의 사랑을 설명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하나는 이타적이고 비감정적인 사랑이요, 다른 하나는 단지 감정적이고 우정에 가까운 사랑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해석에 의하면, 베드로는 처음 두 번 질문을 받았을 때 예수님을 이타적으로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었고,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베드로에게 “너는 나를 친구로라도 사랑하느냐?”라고 물어보신 게 되는 셈입니다.

    자주 접할 수 있는 이 해석은 언뜻 보면 매우 풍성한 해석으로 보여서 저는 이 해석이 참된 해석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제가 방금 제시한 성경 공부 방식과 충돌합니다. 이런 해석 방식은 본문 전체를 그 맥락에 따라 읽는 대신 헬라어 단어의 의미를 추정하는 데 많은 비중을 두기 때문입니다. 그때 제게 저렇게 요한복음 21장을 해석한 선생님처럼 성경을 읽는 학생은 영어 성경으로 자신의 의견을 증명할 수 없습니다. 성경은 한 번도 진짜 사랑, 이상적인 사랑이 비감정적이라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대화하시면서 의미가 아니라 스타일의 관점에서 두 단어 아가파오와 필레오를 교차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헬라어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원어를 사용하는 것의 문제점 중 하나는,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하지 않게 된다는 점입니다. 요한복음 21장 속 동의어들이 모두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을 위해 사용된 걸까요?

    Logos에서 판매하는 가장 가치 있는 모음집 중 하나인 이 책에서 D. A. 카슨(Carson)이 주장하는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의 대화에서만 사랑이라는 개념을 전달하기 위해 다양한 단어를 사용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양’을 언급하시기 위해 다양한 단어를 쓰셨습니다.

    –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어린 양을 먹이라.”

    – “내 을 치라”

    – “내 을 먹이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싶으셨던 동물은 양이었을까요, 아니면 어린 양이었을까요? 만약 예수님께서 의미 있는 차이를 드러내고 싶으셨다고 친다면, 그 차이를 분명하게 나타내기를 원하지는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세 명령형 동사 사이에도 분명한 차이가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먹이라’, ‘치라’, ‘먹이라’. 동사 ‘치다’는 사실 때때로 ‘먹이다’를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이 현상은 특히 70인역(구약성경의 헬라어 번역본)에서 나타납니다.

    또한 요한복음 21장은 예수님께서 아가파오와 필레오 동사를 함께 사용하신 유일한 요한복음 본문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3장 35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라고 말씀하셨고, 요한복음 5장 20절에서도 동일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다만 전자에서는 아가파오 동사를, 후자에서는 필레오 동사를 사용하셨는데, 두 문장에는 의미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대화하시면서 근본적으로 다른 두 종류의 사랑을 말씀하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존 파이퍼(John Piper)는 아가파오 동사의 용례 중 몇 가지를 더 소개함으로써(이들 이외에도 언급할 수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이 단어가 모든 맥락에서 독특한 종류의 사랑을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말합니다.

    “가장 인기 있는 현대의 언어학적, 주해적 오류 중 하나는, 헬라어에서 사랑을 뜻하는 단어 아가파오가 인류의 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암시한다는 견해입니다.

    이런 견해는 사실이 아닙니다. 문맥에 따라 아가파오는 한 패를 향한 우리의 자만하고 배타적인 사랑(마태복음 5:46),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롭고 자기희생적인 사랑(요한복음 3:16), 반드시 무조건적일 필요는 없지만 바로 리더들의 노동 때문에 가지는 사랑(데살로니가전서 5:13) 등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명확히 말씀드리자면, 신약성경이 특별한 종류의 사랑에 대해 언급한다는 명제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어느 경우에 그렇게 하는지 사전에서 헬라어 단어를 찾아보는 것만으로는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죠. 영어로만 성경을 읽을 수 있는 사람도 여전히 사랑이 뭔지 알 수 있습니다.

     

    성경 공부를 위한 건설적인 조언

     

    젊은 신학생에게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해석의 그릇된 정체를 폭로하는 것만큼 재밌는 게 있을까요? 하지만 오늘 제 목표는 파괴적인 비판이 아니라 건설적인 조언입니다. 제가 보기에 일반적으로 성도들이-특별히 열심히 연구하는 사람들이 더욱 그런 듯합니다-성경 속 문장들을 맥락에 맞게 읽는 것보다 성경 단어를 찾는 데 너무 많은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단어를 검색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건 아닙니다. 이 작업은 Logos가 참 잘해줍니다. 저도 항상 사전을 찾습니다. 그래서 예를 들어 “사랑”이 정말 무엇을 의미하는지 찾고 싶으시다면, 저는 사실 일반적인 헬라어 사전(BDAG)에서 (사전에 나오는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의미를 합친다면) 그 의미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을 향해 따듯한 감정이나 관심을 두는 것”, “어떤 것을 높이 사거나 그것으로 만족감을 얻는 것”, “아끼다, 애정을 갖다, 사랑하다, -로 부터 기쁨을 얻다”(출처).

    하지만 여러분은 복음서에 나오는 부활 기사나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를 읽음으로써 ‘사랑’에 대해 훨씬 더 많이 배우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성경 본문들은 이 단어를 사용하지도 않지만, 이 본문들을 읽을 때 아가페를 사전에서 찾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우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두 가지 모두 하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그전에 기억하세요, 둘 중 하나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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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러분은 자신에게 얼마나 좋은 설교를 하시나요?

    글쓴이 – 마크 워드(Mark Ward)

    옮긴이 – 하늘샘

     

    비록 여러분이 단 한 번도 설교할 일이 없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좋은 설교란 어떤 것인지 아셔야 합니다. 이는 단지 설교를 들을 때 그 설교가 나쁜 설교인지 알기 위해서(그리고 피하기 위해서)만 필요한 작업이 아닙니다. 심지어는 좋은 설교가 무엇인지 찾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좋은 설교가 무엇인지 이해해야 하는 이유는, 현실적으로 이야기하면, 여러분이 성경을 해석하는 매순간 여러분이 자신에게 설교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자신에게 얼마나 좋은 설교를 하시나요?

    설교를 준비하는 과정 중 많은 부분은 단순히 성경을 읽고 그것을 자신의 삶에 적용하는 과정 자체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설교자만큼 몸짓이나 목소리 전달에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만, 설교를 준비하는 데 필요한 그 이외의 모든 작업은 해야 합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은 —전도할 때 나누는 대화에서나, 소그룹 성경 공부 시간에나, 심지어 페이스북에서 댓글을 달 때도— 본문에 대한 수사학적 구조까지에도 신경 쓸 필요가 있습니다.

     

    자주 저지를 수 있는 실수

    브라이언 채플(Bryan Chapell) 씨는 그의 탁월한 저서 『그리스도 중심 설교 이렇게 하라』(Christ-Centred Preaching)에서 설교자 및 성경을 공부하는 사람이 빠지곤 하는 큰 함정 중 하나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채플 씨는 이를 “-처럼 되어라”(Be-Like) 메시지라고 부릅니다.

    “-처럼 되어라” 메시지는 기본적으로 “이러이러한 성경 인물처럼 되어라”라는 권면입니다. 이런 접근법에서 아브라함, 모세 및 다른 구약 인물들이 일반적으로 사용됩니다. “-처럼 되어라”의 방식으로 진행되는 성경 공부 모임이 끝나면, 참가자들은 노아, 기드온, 라합, 입다와 같이 본받고 싶은 사람의 다섯 가지 특성을 마음에 품으며 모임을 마무리하게 됩니다.

    이게 왜 문제가 될까요? 사실 이런 접근법 자체가 완전히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하기 전에 제가 실제로 들은 설교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자세한 내용을 바꾸고 또 여러 이야기를 섞은 결과로 나온 예시이기 때문에 제가 이 설교를 어디서 들었는지는 추측하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처럼 되어라메시지

     

    이 이야기 속 설교자는 민수기를 본문으로, 가나안 땅에서 충실하게 업무를 처리한 스파이였던 갈렙과 여호수아를 주제로 설교했습니다. 이 설교의 주제는 정확히 “갈렙과 여호수아처럼 되세요” 였습니다. 청중들이 닮아야 했던 인물의 특성은 간편하게 C로 시작하는 다음의 세 단어로 요약되었습니다: “헌신”(Commitment), “조정”(Conciliation), “성품”(Character)

    설교는 무리 없이 끝납니다. 다 함께 “큰 죄에 빠진 날 위해”(Just As I Am)를 부릅니다. 고개를 숙입니다. 눈을 감습니다. 앞으로 나옵니다. 기도합니다. 예배 끝! (그리고 예배 시간 동안 읽지 못한 문자 메시지를 읽습니다)

    여러분이 자란 교단이나 교회 전통에 따라 예배는 조금씩 다르게 끝날 수도 있겠지만, 저는 모든 복음주의 스펙트럼에서(그리고 그 이외의 분위기에서도) 이런 형식에 부합하는 설교를 들어보았습니다. 브라이언 채플도 분명히 같은 경험을 한 것 같습니다.

    알파벳을 맞추어 두운법을 쓰기 위해 성경의 내용을 왜곡한다는 경향을 차치한다면(Q처럼 외로운 글자들은 절대 사용되지도 않죠), 채플이나 저와 같은 사람이 이런 설교에 대해 불평할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로 “-처럼 되어라” 메시지는 복음 없는 율법을, 의무를 시행하는 데 필요한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 책임을 전달함으로써 성경을 잘못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율법과 복음

     

    상기한다고 해서 문제 될 건 없겠지만, 기독교 환경에 있는 설교 청중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의무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대신 우리는 바울이 로마서 7장에서 붙잡고 있는 문제를 마주하고 있으며, “-처럼 되어라” 메시지는 절대 답할 수 없는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기 원하는 내용은 “나는 왜 이 모든 의무를 시행하지 못하는 것 같지?”에 대한 대답입니다. 우리는, 바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제시하는 대답은 당연히 우리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나의 의무 시행을 파기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의무를 지키는 능력을 불어 넣어줍니다. 저는 갈렙에 대한 설교 전체를 열심히 들었지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언급은 듣지 못했습니다. 예배의 다른 부분에서 은혜에 대해 들었는데, “-처럼 되어라” 메시지에서 이를 들을 수 있는 유일한 부분이었죠. 바로 마치는 기도입니다. 설교자는 마치는 기도에서 하나님께 “도움”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좋습니다! 하지만 은혜가 설교 안에서는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본문에는 거의 확실하게 있었는데 말이죠.

     

    균형 찾기

     

    오늘날의 몇몇 설교자들과 신학자들은 자신들이 듣는 “-처럼 되어라” 메시지에 과민반응합니다. 이들은 성경이 갈렙을 선행에 뛰어난 본보기로 제시한다는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주장하며, 대신 갈렙을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하시는 이야기의 한 역할을 하는 사람으로서만 보여준다고 합니다. 몇몇 복음주의자들은 정말로 진자의 한쪽에만 서 있습니다(사실 이 문제는 오래된 논쟁입니다. 이에 관해서는 다양한 글을 통해서 알아보실 수 있는데, 특별히 존 프레임[John Frame]의 유명한 에세이, “Machen’s Warrior Children”의 열다섯 번째 포인트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 글은 프레임 씨의 Collected Shorter Writings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받은 인상에 의하면 성경을 읽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진자의 반대편에 서 있습니다. 그들에게 본문 속 성경 인물이란 따라해야 할 영웅이기만 하거나 때로는 심하게 비난해야 할 악당이기만 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균형을 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은혜에 관한 하나님의 평서문(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해 한 일들)이 항상 우리의 의무에 대한 명령문들(그리스도와 연합한 새로운 피조물들이 이제 반드시 해야 할 일들)로 흘러가야 합니다. 이 패턴이 바로 성경의 패턴입니다. 로마서나 에베소서처럼 한 책 전체에서도 이런 패턴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두려움과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원하시고 또 행하시기 때문입니다(빌 2:12-13). “-처럼 되어라” 메시지는 우리에게 명령문은 주지만 그를 가능하게 하는 평서문을 빼먹어 버린다.

    그림: <“-처럼 되어라” 메시지는 우리에게 명령문은 주지만 이를 가능하게 하는 평서문을 빠뜨린다>

     

    그리고 이 평서문들은 성경의 본문 안에 들어있습니다. 여러분이 추가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이지요. 평서문은 민수기에서 갈렙과 여호수아가 반복적으로 (자신들의 용기가 아니라) 승리하게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 호소한 장면에서조차도 등장합니다. 이 평서문들은 민수기의 전반적인 맥락에서도 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으며 더불어 성경의 전체 이야기에서도 한 부분을 이룹니다.

    민수기 책 전체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이 어떻게 이행되는지를 보여줍니다. 민수기가 하는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자손(씨앗, seed)이, 비록 그 자손이 신실하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에 갈 수 있을 것인가?” 민수기의 첫 10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그 땅에 들어가기 위해 준비하지만, 민수기의 나머지 부분(11-21장)에서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는 (여호수아와 갈렙 대신) “나쁜 보고”를 했던 10명의 신실하지 못한 스파이들의 의견을 들었기 때문입니다(민수기 13:32). 결국 이스라엘 사람들은 광야에서 40년을 보내게 되었고, 홍해를 건넌 세대에 속한 모든 사람이 죽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는 여호수아와 갈렙을 통해 하나님께서 건네신 은혜를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네, 우리는 이 두 사람의 믿음을 본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야기 뒤에 숨겨진 은혜로운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에게 손을 내미는 장면 또한 봐야 합니다.

    한 발짝 물러나서 구약 전체의 이야기를 본다면, 출애굽의 기적들을 경험하고도 스파이 대부분과 이스라엘 사람 대부분이 신실하지 못했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이 믿음 없는 사람들의 선행을 보시고 그들을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는 점이 꽤나 명백하다는 얘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신명기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또는 너희의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신명기 7:7-8, 개역개정)

    하나님 이야기의 또 다른 주요 테마가 여기에서 등장합니다. 민수기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의 백성에게만이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적용됩니다. 갈렙은 그니스 사람으로, 에서의 후손이기에 사실은 약속의 내용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는데요. 이 역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내용, 즉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받으리라는 내용의 일부입니다(창세기 12:3).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 하나님의 자비를 받을 자격은 없지만 모두 동일하게 받습니다. 그게 바로 은혜이죠.

     

    구속의 관점에서 성경 공부 하기

     

    브라이언 채플 씨에 의하면, 성경을 읽는 우리들은 “성경이 거의 모든 족장이나 성자의 안 좋은 점에 대해 말하는 데 쏟는 관심을 존중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는 목적이 언제나 인물의 좋은 인성을 찾고 그걸 받아 적어 우리가 영적으로 해야할 일 목록에 추가하는 게 되어 버리면, 우리는 성경의 관심사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다윗, 기드온, 노아가 보여주는 긍정적 예시들은 우리가 본받을 수 있도록 주어진 게 맞습니다. 그래서 다윗의 간음, 기드온의 배교, 노아의 술취함 같은 그들의 죄악이 기록된 것도 어떤 면에서는 우리가 그들을 통해 도덕적 가르침을 얻기 위해서 이기도 합니다. 바울은 심지어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은” 것이 하나님의 목적에 부합한다고 얘기합니다: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고린도전서 10:5-6, 개역개정)

    하지만 성경은 일차적으로 인간에 대한 것도, 우리가 어떤 일을 했고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를 다루는 책이 아닙니다. 그건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창조자이신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셨고 또 인류가 죄에 빠져 생긴 난처한 상태에서 우리를 어떻게 구해주실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성경 전체의 이야기 속에는 은혜로 가득한데요, 이는 우리가 본질적으로 구원 받을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행하신 모든 일, 특별히 그리스도를 통해 하신 일은 바로 은혜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의 타락한 피조물을 구원하심으로써 자신을 영화롭게 하시기 위해 어떤 일을 행하셨는가를 다루는 이야기입니다. 바로 이런 이해를 여러분의 영성 훈련 시간에 적용하시기 바랍니다. “-처럼 되어라”이기만 한 성경 공부를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대신 성경의 모든 페이지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은혜 가운데 역사하시는지 살피시기 바랍니다.

     

    마크 L. 워드 주니어(Mark L. Ward, Jr.)는 2012년 밥 존스 대학(Bob Jones University)에서 박사 학위를 수여하고 지금 Logos 프로(Logos Pro)로서 교회를 섬기고 있습니다. 워드 씨는 성경적 세계관: 창조, 타락, 구속(Biblical Worldview: Creation, Fall, Redemption)을 포함한 많은 고등학생용 성경 교재를 저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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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왜 사해 사본에 관심을 가져야 할까요?

    히브리 대학과 로고스 더랩(theLAB)의 크레이그 에반스발표한 내용 때문에 지난주가 떠들썩했습니다. 바로 열두 번째 사해 사본(DSS) 동굴이 지난달 발견되었다는 발표였는데요.

     

    그렇지만, 도대체 왜 사해 사본이 중요한 걸까요? 제가 아래에서 세 가지 주된 이유를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렇지만 그전에, 우선 사해 사본이 무엇인지 살펴봐야겠습니다.

    글쓴이 / 

    옮긴이 / 하늘샘

    사해 사본은 무엇일까요?

     

    ‘사해 사본’이라는 용어는 사실 여리고에서 마사다로 이어지는 이스라엘 땅 일부 지역(직진 거리로 40마일 정도 거리)에서 발견된 풍부한 고고학적 보물들을 가리킵니다. 이 보물들은 기원전 4세기부터 기원후 2세기까지에 속하는 물건들입니다. 이 지역에 살았던 여러 거주민들이 자신의 흔적을 남겨놓고 떠났는데, 놓고 간 물건에는 고대 폐허, 항아리, 동굴, 양피지, 파피루스 종이, 리넨 옷감, 동전, 도구 등이 있습니다.

     

    발견 역사

    1946년 연말 아니면 1947년 연초 어느 날, 15세 양치기 소년이 잃어버린 양을 찾다가 와디 (우기 때 외에는 물이 없는 하천- 편집자 주) 혹은 협곡으로 들어갔습니다. 절벽에 위치한 동굴의 입구에 돌을 던졌더니 항아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렸고, 양치기는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여기서 양치기가 찾고, 가족에게 보여주기 위해 가져갔던 사본들이 현대 성서 고고학의 가장 중요한 발견 중 첫 번째 발견이었습니다. 이 와디가 바로 사본이라는 보물 대부분이 발견된 곳이며 지금은 와디 쿰란으로 유명해진, 사해의 북서쪽 해변에 위치한 곳입니다.

     

    1940-50년대에 현지 및 서양 탐험가와 고고학자들이 이 지역을 샅샅이 발굴했습니다. 수백 개의 동굴을 탐사했지만 단 열하나의 동굴에서만 지금 사해 사본이라 부르는 보물들이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사해 사본이 나타난 동굴 숫자는 랜달 프라이스(Randall Price), 오렌 거트필드(Oren Gutfeld), 아히아드 오바디아(Ahiad Ovadia)가 최근 펼친 고고학 작업 덕분에 열두 개로 늘었습니다. 아쉽게도 글이 적힌 통째 사본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항아리 조각, 양피지, 파피루스, 천 덮개를 보아 이 열두 번째 동굴은 확실히 다른 열하나의 동굴과 나란히 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해 사본

    지금까지 열두 동굴에서 600개의 사본이 발견되었습니다. 4번 동굴에 가장 집중된 양이 있었는데요, 100개의 성경 사본을 포함한 400개의 사본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이 동굴에서 나온 사본 중 포함되지 않은 구약 성경은 에스더 밖에 없습니다. 사해 사본에서 발견된 가장 대단한 보물 중 하나가 대이사야서(1QIsa)로 알려진 거의 온전한 이사야서 사본입니다. 사해 사본 내 성경 자료는 구약 성경의 본문이 어떻게 전파되었는지에 대한 중요한 자료입니다.

     

    하지만 성경 자료는 이 문서의 더 작은 부분을 차지합니다. 사해 사본에는 많은 양의 외경과 위경 저작들이 있습니다. 토빗, 집회서, 예레미야의 편지, 에녹1서, 희년서, 레위의 유년 등이 그 예시입니다. 이뿐 아니라 쿰란의 종교 공동체의 생활 양식을 다루는 소위 쿰란 종파 문서라 불리는 것들이 있는데, 여기에는 훈련 교본(the Manual of Discipline)과 감사 찬송(the Thanksgiving Hymns)이 포함됩니다.

     

    마지막으로 사해 사본에는 구약의 다양한 책에 대한 주석이 있는데, 하박국 주석이 그 예시입니다. 이 주석에는 쿰란 공동체가 가졌던 해석 방식에 대한 흥미로운 통찰이 들어있습니다. 쿰란 공동체는 절별 분석 방식을 채택했으며 악한 제사장에게 핍박받는 “의의 교사(The Teacher of Righteousness)”를 중심으로 성경을 해석합니다.

    사해 사본이 고고학적이고 역사적인 측면에서 재밌다고는 해도, 왜 사해 사본이 오늘의 성경 신학자들에게 중요한 걸까요?

     

    왜 사해 사본이 중요할까?

    우리는 다음의 세 가지 입장에서 사해 사본의 중요성을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본문, 사람, 해석학

     

    본문 전수의 역사

    첫째, 사해 사본은 성경 전수의 역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사해 사본은 현재 구약 성경의 가장 오래된 사본으로서, 1946년 발견된 사본보다 거의 천 년 가까이 오래되었습니다. 이 사실은 그 자체로도 큰 의미를 갖지만, 더불어 사해 사본은 70인역이나 마소라 본문과 같은 사본과 비교하여 학술적인 문법 차이, 구두점, 철자를 연구할 수 있으며 더불어 중간기 기독교 이전 유대교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는 데 도움을 줍니다.

     

    확실히 사해 사본이 제공하는 가장 중요한 본문 비평적 기여는 사해 사본 덕분에 구약 본문의 마소라 본문이 얼마나 일찍 형성되었는지 알 수 있다는 점입니다. 사해 사본이 발견되기 전에는 마소라 본문이 아무리 빨라도 기원후 2세기에 속하였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보다 수세기 앞선 자료라고 보는 사람이 많아졌지요.

     

    그래서 이제 현대 성경 신학자들은, 자신만의 비평본을 사용하든 다른 방법을 사용하든, 자신들이 다루는 본문이, 수세기전 하나님을 향한 정당한 열정으로 뭉친, 실제 사람들이 충실하고 정확하게 전해준 본문이라는 데 더 큰 신뢰를 갖고 작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역사 속 실존했던 사람들

    이 지점에서 우리의 두 번째 의견으로 이어집니다. 사해 사본 뒤에는 그것을 만든 실제로 존재했던 사람이 있었으며, 그들이 이 두루마리에 그들의 흔적을 남겨놓았다는 거죠. 쿰란 공동체가 살았던 방식을 기록한 글로는 훈련 교본(the Manual of Discipline)이 있으며, 그들에 부른 찬송은 감사 찬송(the Thanksgiving Hymns)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해 사본은 피와 살을 가진 진짜 사람이 한 때 이 지역에서 살았다는 중요한 사실, 그리고 그들만의 독특한 구약 해석을 엄격하게 붙잡고 살았다는 사실을 기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자료입니다.

     

    이들에게 성경은 삶과 죽음을 가르는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얼마나 이 성경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던지 이스라엘의 사막 지역에 살기를, 예루살렘의 성전으로부터 떨어져 있기를 자처하였죠. 이런 행동 자체가 당시 흔히 볼 수 있던 유대교로부터의 근본적인 탈출이며, 신약 저자들의 근본적인 성경 해석만이 이에 대등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대의 성경 해석

    이 지점이 해석학에 관한 저희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주장으로 이어집니다. 재밌는 비교를 하나 해볼까요? 쿰란 공동체가 유대교의 한 형태를 실천하기 위해서 고대 팔레스타인의 불모지로 이동한 반면, 기독교 공동체는 -그리스도를 유대인들이 오래 기다려온 메시아로 여겼기에- 처음부터 고대 회당에 머물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두 공동체 모두 자신들이 어떻게 일상과 내세를 이해할지 형성하고 알려주는 데 독특한 구약성경 이해 방식을 의지하였습니다.

     

    우리가 사해 사본의 비성경 문서(성경 필사본이 아닌 글들-역자 주)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경건한 유대인들이 자신이 살았던 시대에 맞게 구약의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입니다. 쿰란 공동체의 사람들이 다양한 구약 성서에 달았던 주석과 공동체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기록한 문서는, 오랜 시간 전에 살았던 사람들에게 성경이 얼마나 강력한 존재였는지 확실히 보여줍니다. 하지만 쿰란 필사가들이 보여준 해석 방식과 신약성경 저자들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바로 거기에 의미있는 사해 사본 연구의 위대한 가능성이 있는 거죠.

     

    사해 사본이나 신약성경에 대해 학술적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서로를 함께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해 사본을 고려하지 않은 상태로 진정한 신약성경 연구를 했다고 볼 수 없고, 또 그 반대의 상황도 있을 수 없습니다. 사해 사본과 신약성경 모두는 예수님 시대까지의 그리고 예수님 시대의 유대교에 대한 아주 중요한 증거입니다. 사해 사본과 신약성경은 다양한 주제에 대해 서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그 주제로는 예수님의 어록, 로마 점령 기간 중 메시아에 대한 기대들, 제2성전 시기에 “은혜” 개념 등이 있습니다. 이 마지막 주장의 특별히 좋은 예시로는 최근 존 바클레이(John Barclay)가 출간한 Paul and the Gift라는 책이 있는데요, 이 책에서는 사해 사본이 바울이 제시하는 하나님의 카리스(charis) 혹은 은혜의 주요 대화 상대로 등장합니다.

     

    사해 사본이 당신에게 의미 있는 이유

    요약하면, 사해 사본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 고대 팔레스타인의 시대에 있었던 유대교 중 적어도 한 단체의 문서, 사람, 해석 방식을 보여주는 필수적인 증거입니다. 최소한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쿰란 공동체의 역사와 가르침과 친해져야 할 이유가 있는 셈입니다.

     

    사해 사본 공부에 입문하기 위해서 제가 개인적으로 추천드리는 방법이 있습니다. 우선 The Dead Sea Scrolls in English에 있는 고전적인 게자 베르메스의 사해 사본 번역본과 개론 부분으로 시작하시는 겁니다. 최근에 소개된 소개글 중 유용한 자료로는 조셉 피츠마이어의 The Impact of the Dead Sea Scrolls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이 두 자료 모두 Logos 7에서 관련 자료와 연결되어 있으며 검색 가능한 자료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자료 외에도 많은 사해 사본 자료가 Logos 7에 있습니다. (한글 제품 패키지도 살펴보기)

     

    그렇지만 사해 사본 번역본을 읽고 개론 지식을 익힌 이후에는 어떻게 더 깊이 있는 연구를 할 수 있을까요? 이 내용은 다음 포스팅에서 살펴보겠습니다.

     

    더랩(the LAB)을 구독하시는 것은 어떨까요? 더랩을 통해서 쿰란 공동체에 대한 최신 소식을 접할 수 있으며, 성경을 학술적으로 연구하는 것과 관련된 모든 주제에 대해 전세계 성경 학자가 쓴 설득력 있는 글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